"벌써 목련이 다 피었네."

 

 

공기 중에 가득한 달큰한 꽃 냄새에 츠키시마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함께 주변을 둘러본 쿠로오가 공원 구석 흐드러지게 크림색의 꽃망울을 피워낸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좀 싸늘했지만 햇살은 어느덧 완연한 봄이었다. 목련 나무 뒤로도 노란 점점이 작은 산수유 꽃과 희고 붉은 매화 꽃이 한창이었다. 쿠로오와 츠키시마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공원으로 향했다. 향긋한 목련의 냄새와 푸른 하늘에 구름처럼 피어난 꽃 이파리를 보며 새삼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풍선 불래?"

 


뜬금없이 웬 풍선? 츠키시마가 물을 틈도 없이 쿠로오가 낮게 내려온 가지에서 똑 목련 꽃송이 하나를 땄다. 아, 꽃 꺾으면 안 되는데. 말릴 틈도 없었다. 내밀어진 꽃송이에 뭘 어쩌라는 건지 영문을 몰라 멀거니 쿠로오를 쳐다보자 쿠로오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요."

"츳키 목련으로 풍선 불 줄 몰라?" 

"하?"



뜬금 없는 소리에 츠키시마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쿠로오는 그런 츠키시마의 반응이 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꽃으로 풍선을 어떻게 불어요?" 

"에에? 츳키 정말 모르는 거?" 

"의미를 모르겠네요." 

"자, 이것 봐."

 


쿠로오는 목련 꽃잎 하나를 꽃송이에서 뽑아 끄트머리를 조금 손톱으로 자른 후 그 곳에 입술을 대고 훅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정말로 풍선이 부푸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며 납작하던 목련 꽃잎이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뭘하자는 건지 알 수 없어 불퉁해진 츠키시마의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그런 츠키시마가 귀엽다는 듯 웃은 쿠로오가 손바닥 위에 동그랗게 부푼 꽃잎을 두고 그 위로 다른 손으로 누르자 탁, 터지는 소리가 귀여웠다. 



"전부 다 불어지는 건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하나씩 따서 불어보고 안 불어지는 쪽이 지는 거. 그래서 꿀밤 맞기 놀이 같은 거. 어릴 때 안 해봤어?"  

"실례지만 쿠로오씨 연세가...." 

"아 뭐야! 츳키 정말 몰랐어?"



미야기에서는 절대로 이런 거 하고 놀았을 줄 알았는데! 투덜거리는 쿠로오에게 츠키시마는 안경을 고쳐쓰며 쿠로오씨 사실 에도 시대 사람 아니냐며 빈정거렸고 쿠로오는 요즘 애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켄마랑 나는 이러고 자주 놀았는데 중얼거렸다. 종종 저 사람 고등학생 맞나 싶은 말같은 걸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이럴 땐 나이를 속이고 고등학생인 척 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츠키시마였다. 나이를 캐물으며 놀리던 츠키시마는 불퉁하게 꽃잎 하나로 풍선을 하나 더 부는 쿠로오의 입술에 시선을 뺏겼다. 포오옥- 쿠로오가 불어넣는 숨결에 동그래지는 꽃잎이 다시 봐도 신기했다. 쿠로오가 이번에는 통통한 꽃잎 풍선을 츠키시마에게 넘겼다. 꽃잎 사이로 바람이 들어간 것을 신기하게 콕콕 눌러보는 츠키시마를 쿠로오가 사랑스럽다는듯 바라보았다. 


관심 없어할 줄 알았더니 츠키시마가 쿠로오의 손에 들린 꽃송이에서 꽃잎 하나를 가져 갔다. 꽃잎 끝에 손톱을 가져다 대보더니 '이 정도?' 하고 눈으로 묻는 츠키시마의 손을 겹쳐 쥐고 조금 아래로 내려주며 쿠로오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양손으로 꽃잎을 잡고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 넣는 옆모습이 귀여웠다. 쿠로오는 쉽게 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츠키시마의 눈썹 끝이 조금 처졌다. 쿠로오가 조금 더 세게 불어봐- 하니 볼을 빵빵하게 불리고 포옥 세게 숨을 불어 넣자 츠키시마의 꽃잎도 슈우욱,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나며 동그랗게 부풀었다. 반짝반짝해진 눈으로 신기하다는 듯 저를 쳐다보다가 크흡, 웃음을 터뜨리는 쿠로오의 반응에 머쓱하게 다시 표정을 굳힌 츠키시마가 합장을 하며 탁, 꽃잎 풍선을 터뜨렸다.



"내기 할래?" 

"뭘로요? 꿀밤?" 

"에이, 꼬맹이들도 아니고 그런 것보다는 역시 소원 들어주기지." 

"그거나 그거나...." 

"더 많이 풍선 분 사람 소원 들어주기." 

"유치해." 

"이기면 되지. 질까 봐 그러는 거야?" 

"무슨 소원 걸 건데요." 

"에헤이, 말해주면 재미없지." 

"저는 소원 없는데요." 

"아아~~ 그러지 말고. 하자~" 

"쿠로오씨는 계속 했었으니까 더 잘할 거 아니에요. 제가 더 불리한 게임 아닌가." 

"그럼 츳키가 하나 더 많이 해."

 


은근히 승부욕을 보이는 츠키시마에게 핸디캡을 제시하고 나서야 츠키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불어본 꽃잎이 불어졌기에 뭐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내기가 걸리자 마자 츠키시마가 고른 꽃잎 하나는 불어지지 않았다. 이익, 오기가 생긴 츠키시마가 고심 끝에 고른 두번 째 꽃잎은 겨우 성공. 그에 비해 쿠로오는 첫번째 고른 꽃잎도 쉽게 성공이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집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도둑잡기의 카드패를 고르듯 신중하게 꽃잎을 뽑아 들고 불고. 몇 번의 순서가 오가고 결국 승자는 쿠로오였다.


엉터리! 이거 부는 요령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 츠키시마가 불어지지 않은 꽃잎에 몇 번이고 공기를 불어 넣다 되지 않자 쿠로오가 츠키시마가 불고 있던 꽃잎을 들고가 자신이 불어보았다. 방금까지 제가 물고 있던 꽃잎의 끝이 쿠로오의 입술 사이에 머금어 지는 것에 확 츠키시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냐. 안 불어지는 꽃잎도 있다니까. 츠키시마가 운이 안 좋은 거지. 가위바위보 처럼 말이야." 

"...소원이나 말해요." 

"츳키."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반대쪽으로 돌린 츠키시마의 고개를 쿠로오가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마주한 쿠로오의 눈빛이 진지해진 것에 놀랄 틈도 없이 쿠로오가 들고 있던 목련 이파리를 츠키시마의 입술에 대곤 그 위로 쪽 입 맞추고 떨어졌다. 그리곤 생긋 웃는 얼굴에 더 숨길 수도 없을 만큼 츠키시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꽃잎을 사이에 두고 닿았다 떨어진 쿠로오의 입술의 느낌이 생생해 츠키시마가 입술만 뻐끔거리자 쿠로오가 속삭이듯 말했다.



"연애하자."  

"무...무슨..." 

"솔직히 너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이럴 줄." 

"......." 

"봄도 왔고, 꽃도 피고. 딱 연애하기 좋을 때 아닌가. 언제까지 모른 척 할 거야." 

"...." 

"이제 그만 하고 넘어오지?" 

"도망칠 구멍 하나를 안 만들어 주시네." 

"당연하지. 그래서, 대답은?"



불어지지 않아 납작한 꽃잎 하나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던 츠키시마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쿠로오는 잠시 기다려주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푹 한숨을 쉬듯 웃고 일어서며 츠키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조금 더 생각해봐." 

"..." 

"가자. 저 쪽으로 더 가면 아마 아이스크림..."



먼저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의 옷깃을 잡은 츠키시마가 돌아본 쿠로오의 뺨에 입맞추었다. 

 


"대답. 됐죠." 



휘둥그레진 채로 굳은 쿠로오를 지나쳐 휘적휘적 빠르게 걸어가는 츠키시마의 귀며 뺨은 온통 진달래빛이었다. 츠키시마의 얼굴을 물들인 꽃물은 빠르게 쿠로오의 얼굴에도 물들어 갔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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