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까탈스러운 해안으로 빠지기 전 선원들이 날씨를 가늠하기 위해 머무르고 가는 곳.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들어왔다 흘러나가는 뱃사람들에게 맞춰진 마을이었다. 물 위에 오래 떠다닐 치들의 육욕을 채워줄 향락가가 번화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홍등가 속 홀로 노오란 불을 밝히는 고서점은 누가 보아도 항구마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젖가슴을 거의 다 내놓은 채 하룻밤의 사랑을 파는 여인네들 사이 아무 말 없이 책 옆에 진열되어 있듯 고요한 고양이 한 마리 역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서점의 불빛보다 더 환한 노란 머리칼의 고양이는 이질적인 이미지로 잘도 홍등가 속에서 제법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먼지며 얼룩으로 뿌연 안경을 코 끝에 걸쳐 쓰고 멍하니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고양이는 제법 사나웠지만 안면을 익히고 낯가림이 사라지면 제법 얌전히 손길에 저를 맡기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던지 고양이는 사랑받았다. 그의 무표정 마저도. 홍등가의 여인들이 품에 끼고 예뻐하는 통에 오해를 받아 험한 꼴을 당할 뻔도 했지만 고양이는 온통 상처투성이 얼굴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바다에서 떠내려와서 홍등가 사이에 있는 고서점 주인 우카이가 데려다가 키우는 고양이 수인 츳키 보고 싶다. 처음에는 자꾸만 밤에 비척비척 나가서 바다에 빠지려고 하는 거 우카이가 구해주고. 하염없이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홀린듯이 누군가 따라가다가 멈추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다 실망하길 반복하고 그러다가 결국 그냥 우카이네 고서점에서 눌러 앉아 살게 되는데 텅 빈 눈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츳키.
그러다 그 마을에 들어온 쿠로오한테 츳키가 눈에 띄는데 희뿌연 안경으로 탁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츳키가 쿠로오한테 뛰어와서 킁카킁카 냄새 맡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봤다가 소매에 코박고 냄새 맡았다 얼굴 쳐다봤다 반복 하는 거. 쿠로오는 당황해서 으에에 뭐지 하는데 주변에서도 츳키가 그러는 거 처음이라서 어머어머하고.
한참 뚫어져라 쿠로오 보던 츳키는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쿠로오 잡고 있던 거 놓고 쳇, 혀차고 다시 자리로 가고. 츳키 덕분에 시선집중이었던 쿠로오한테 여자들이 달라 붙어서 츳키가 무슨 냄새 맡았는지 궁금해하고. 이끌려서 한 술집으로 들어가는데 곁눈질로 바라본 뒤에서는 여러 여자들이 이번에도 아니었어? 오구오구 츳키를 달래주고 있고. 무표정이지만 조금 아래로 처진 귀 끝이 쿠로오의 시선을 빼앗았겠지.
다음 날 늦은 아침에 술집에서 나오는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는 츳키에게 쿠로오가 다가가서 안녕. 말을 거는데 츳키는 팩 고개를 돌리고. 머쓱해진 쿠로오가 어제 여자들이 했던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보려고 하자 제법 매운 손길로 뿌리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려서 뭐야 싶겠지. 어제는 먼저 달려와서 냄새 맡더니... 하다가 아! 하고 밤에 다시 거리를 찾아서 고양이 앞에서 작은 병을 찰랑 찰랑 흔들어보이는 쿠로오. 뭔가 경계하면서 쳐다보다가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풍기는 향기에 고양이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는 걸 보며 그 반응이 재미있는 쿠로오.
주변에서도 신기해해서 뭐냐고 묻는 거에 서양에서 향유 대신 쓰는 향수라는 거라고 설명해주고 쿠로오의 손에서 눈을 못 떼는 츳키한테 팔 거라 많이는 못 주고 조그만 병에 나눠주는 쿠로오. 그리고 츳키를 하룻밤 사고 싶어하지만 걔는 파는 거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당하고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그 고양이 바다에서 떠내려왔다고 하고 누구 기다리는 것 같다고 하고 그러는 거 알게 되겠지. 그리고 부두를 떠나야할 때 나 간다 야옹아 하는데 츳키가 손 흔들흔들 해줘서 정들어버리는 쿠로오.
그러다 종종 그 마을에 들를 때면 츳키를 찾고 나중엔 간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도 츳키가 얌전히 있게 되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얼룩진 안경을 쓰고 멍하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츳키 보고 싶다. 어느 샌가 쿠로오를 기다리는 모습도.
그러다 츳키가 자신에게 쪼르르 달려오게 만들었던 그 향수의 조향사에게 네가 만드는 향수는 동양의 어떤 고양이도 좋아한다는 말을 해줬는데 그 조향사가 캐묻겠지. 어떻게 생긴 고양이냐고. 어디서 만났냐고. 그 조향사가 원래 츳키의 주인인 거 알고 쿠로오가 츳키 주인 찾아주는데 이젠 더 못 보겠지 싶었는데 그 부둣가 마을의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츳키는 결국 다시 그 고서점으로 돌아가고 주인이 셋이 되어버리면 좋겠다. 원래 주인 아키테루랑 바다에서 건져서 구해준 우카이랑 츳키가 마음 줘버린 쿠로오랑. 쿠로오가 얼룩을 닦아준 깨끗한 안경을 쓰고 서점 앞에서 아키테루와 쿠로오를 기다리는 츳키. 그런데 사실 츳키 몸을 가지고 길들여준 건 우카이였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