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올라와 깊은 산 속 호수로 바뀌어 버린 고래들의 무덤. 그 앞을 지키는 인어 츳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깊은 호수가 있고 그 안 쪽은 깊이도 알 수 없이 시꺼멓게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로 어둡고 어두운 구멍처럼 보여서 사람들도 괴이하다며 찾지 않는 곳. 바다였던 곳인지라 수풀 중간 중간 죽은 산호가 사슴뿔처럼 올라와 있고 그 주변은 들풀들의 꽃과 무성한 나무로 둘러 쌓여 예쁜 풍경 사이 종종 보름달이 뜨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인어.
그 그림자에 괴물이 산다며 더욱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는데 점점 마을이 커지고 사람들이 영역을 넓히면서 그 호수도 무섭지만 마을에 도움이 되도록 어떻게든 해봐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거. 하지만 고래들이 마지막 안식을 찾아 잠들던 동굴이 그대로 있는 깊은 호수는 인간이 어쩔 수 있을 정도의 깊이나 규모가 아닌지라 호수의 밑바닥을 보려 들어간 사람들이 몇몇 죽고 잠시 그 호수를 어떻게 해보려는 의견은 잠잠해지지만 호기심을 갖는 청년들을 생겨나겠지. 아무도 그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이 없대. 괴물이 살고 있대.
한 번이라도 그 호수 아래로 가보려는 시도를 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타이틀을 얻는 곳으로 변질되고 바다에서 물질하다 이사를 오게된 쿠로오가 궁금해서 한 번 들어가보겠지. 대체 얼마나 깊길래? 괴물이 정말로 있어? 사람들이 쉬쉬하는 것만큼 으스스하지도 않고 오히려 호수를 봤을 때는 옥색 물빛이 신비로울 지경이라 헤엄쳐 들어가는 쿠로오. 그러다 갑자기 절벽이 시작되는 듯 훅 깊어지며 까마득히 어두운 물이 보이는데 햇빛의 각도가 어찌저찌 잘 들어 맞았는지 좀 보이는 것도 같아서 더 들어가 보는 거.
들어가는 입구만 조금 어두운데 물 아래 계속 이어지는 구멍 옆으로 희미하게 물방울이 올라오는 것 같은 샛길이 보여 들어가보려는데 시야 옆으로 사람 크기만한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것이 보이는 거. 희미하게 뭔가 빛이 나는 것도 같아서 둘러보는데 보이지 않아서 다시 공기방울이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보려는 찰나 아래에서 앞으로 쑥 인어가 올라와서 입에 물고 있던 숨줄을 뱉고 물 먹어버리겠지. 밖으로 이어져 있던 대롱도 다시 잡지 못하고 그나마 폐에 남아 있던 공기도 뱉어버려 가라앉으며 위로 뻗은 손을 누군가 낚아 채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쿠로오의 시야가 암전되고 괴롭게 안에 들어 찼던 물을 쿨럭이며 눈을 떴을 땐 참방, 물보라가 치는 소리가 들리며 여러가지 색이 섞인 아름다운 꼬리가 물 아래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겠지.
저게 그 괴물인가? 안 돼. 가지마. 다시 따라들어가보려 했지만 이미 기울어버린 해는 호수의 아랫부분을 다시 비춰주지 않았고 그날은 더 들어가보지 못하는 쿠로오.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몇 번 더 호수에 가서 아래까지 빛이 들 때를 기다리는 쿠로오. 그러다 드디어 그 날처럼 빛이 희미하게 아래까지 드는 날 내려가보려는데 살랑, 달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바위 어딘가에서 나와 쿠로오를 향해 올라오는 거. 물 속이라는 것도 잊고 또 코로 숨을 들이마실 뻔 하던 걸 참고 멍청하게 굳는데 조금 다가오다 만 인어가 뻐끔거리며 무언가 전하려하는 거. 괴물이라기엔 암벽 사이 홀로 산호빛으로 반짝이는 인어가 너무 아름다워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답답한지 조금 더 가까이 올라오는 인어. 이 아래로는 위험해. 더 내려오지 마.
소리가 들린다기보다는 마음 속으로 직접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목소리에 흠칫 쿠로오가 놀라는 걸 보고 다시 인어는 아래로 내려가는데 쿠로오는 겁도 없이 그걸 따라가려다가 인어가 뒤돌아보고 더 당황하는 거. 이번에는 진짜 길게 대롱도 만들어왔겠다 저 예쁜 인어도 궁금하고 아래도 궁금하니 쿠로오가 쫓아가는데 물 아래로 갈수록 수압에 점점 힘들어지겠지. 그래도 조금만 더 따라가보려고 하는데 희미하게 멀어지며 도망치던 인어가 아직도 쿠로오가 뒤쫓아오는 걸 보고 다시 다가와 고개를 살래 살래 저음. 여기서부터는 정말 위험해. 오지마. 가까이에서 본 인어는 더 아름다워서 더 다가가려는데 인어가 쿠로오를 밀어내며 단호한 표정을 지음. 안 돼. 자신에게 닿은 손가락을 보다가 그 날은 그냥 돌아가고 그 다음날 또 호수에 들어가 인어를 찾고.
계속 쿠로오가 찾아오니 어느 날은 수면 가까이에 인어가 먼저 올라와 있는 거에 반가워서 다가가니 질린다는 표정으로 수면 위로 올라가는 인어. 그걸 따라 올라가는데 인어가 짜증을 부림. 오지 말라니까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내가 무섭지도 않아? 인간들은 내 그림자만 봐도 무섭다고 도망가던데. 그거야 네 그림자만 봤으니까 그랬겠지. 널 제대로 봤으면 그러지 않았을 걸. 실실 웃는 쿠로오의 대답에 한숨을 쉬는 츳키. 아무튼 오지마. 하는 거에 거기엔 뭐가 있는지 묻자 고래들의 무덤이라고. 안 쪽으로 들어가면 자기도 알 수 없는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들어가려는 것들과 고래들의 안식을 지키는 거라고 말해주는 츳키.
오래도록 고래들의 무덤을 지켜온 츳키도 혼자서 파수꾼 노릇하려니 외로웠던 것을 쿠로오가 자꾸 찾아와주는 게 싫지 않았고 쿠로오가 더 들어가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조건 삼아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함. 계속 혼자서 있었냐고 외로움을 만져주는 쿠로오에게 인어의 마음이 열리고 결국은 고래들의 무덤 입구까지 쿠로오를 안내해주게 되는데 안 쪽에는 보석같은 것들로 작은 빛으로도 반짝거리며 앞이 보였으면 좋겠다. 츳키의 비늘색을 닮은 보석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마을에서는 이미 하루가 멀다하고 호수를 찾는 쿠로오가 물귀신에라도 홀린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었겠지.
사람들이 츳키를 안 좋게 말하는 것도 싫고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도 싫어서 거긴 옛날에 바다였다고. 고래의 무덤이었고 괴물이 아니라 무덤을 지키는 인어가 살고 있다고 말해버리는 쿠로오. 진짜 실성한 거 아니냐는 말에 츳키에게서 받은 보석도 보이는데 그것에 마을 사람들 눈이 뒤집히겠지. 그 호수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 호수 근처를 파서라도 보석을 캐 팔고 싶어하고 쿠로오가 막으려 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 될 테지. 츳키만이라도 해코지 당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쿠로오는 방해 못하게 잡혀서 묶이고. 결국 호수를 메우면서 다른 길로 물길을 내어 물을 빼고 고래들의 무덤 입구 언저리까지 파헤친 사람들이 보석을 캐내고 쿠로오를 풀어주는데 허겁지겁 달려간 호수의 주변은 만신창이로 변해있었을 것.
인어는 어떻게 됐냐고 묻자 그런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여전히 사람들은 쿠로오를 미친 사람 취급하겠지. 그래도 노다지를 발견했으니 됐다며 신경 쓰지 않고. 쿠로오는 다시 아무리 물 속을 들어가봐도 보이지 않는 츳키의 모습에 그 마을을 떠났을 것 같아. 그리고 쿠로오가 마을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마을은 산사태가 나서 전부 무너져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곳을 찾는데 메우고 여러 갈래로 파헤쳐 놓았던 호수가 입구는 좁아졌지만 아직 물웅덩이처럼 남아있어서 들어가보는 쿠로오.
어둡기만 한 곳을 하염없이 내려가고 내려가다 수압에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저 멀리 희미하게 산호색 지느러미가 보이는 것 같아 더 내려가려던 쿠로오가 결국엔 정신을 잃으며 눈을 감는데 예쁜 물고기가 다가와 입 맞춰 주고 그대로 가라앉는 쿠로오. 이제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깊은 숲 속. 끝을 알 수 없는 까만 물 웅덩이속. 햇빛에 물 아래가 투명해지는 어느 날엔 종종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전설 같은 거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