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듯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의식 사이로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소리, 작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어왔다. 눈을 뜨려는데 자면서 울기라도 한 건지 속눈썹과 눈꺼풀 사이에 따개비처럼 눈곱이 붙어 애써 뜨려는 눈이 따가웠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살금살금 눈을 비비면 차례로 깨어나기 시작한 몸이 아직은 잠에 젖어 무거웠다. 츠키시마는 다리가 조금 저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손끝에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공룡 인형을 끌어당겨 다시 품 안에 폭 안았다.
하암- 길게 늘어지는 하품을 하면 눈을 비빈 보람도 없이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비죽 새어 콧날로 흘러내렸다. 또 손을 올려 닦기도 귀찮아 꼭 끌어안은 인형의 머리에 고개를 묻으며 닦아내자 그제야 조금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더워. 몸이 무겁다, 다음으로 느낀 감각에 츠키시마는 긴 다리를 휘적거려 하체를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냈다. 배와 엉덩이만 겨우 이불을 덮은 채 다시 뒹굴 옆으로 누운 츠키시마는 제대로 뜨고 있지도 않았던 눈을 온전히 감았다. 다시 잠을 청하기엔 졸음이 걷히고 있었고 그렇다고 부지런히 몸을 일으키기엔 귀찮았다. 일어나서 뭘 해야 하더라, 생각해봐도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시간으로 치자면 오늘 새벽까지도 야근에 시달렸는데 모처럼 맞는 주말에 이 정도 게으름쯤은 괜찮겠지. 츠키시마는 마음 편히 계속 공룡을 끌어안고 누워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하품. 숨을 고르며 귀를 기울이면 온통 적막한 집 안의 백색 소음이 들려왔다. 어딘지 모를 이웃의 조그마한 물소리, 시계초침소리, 냉장고의 냉각기가 돌아가는 진동 같은 울림. 누워 있는 중에도 작게 기지개를 켜고 뒤척거리는 동안에도 제가 내는 기척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 굳이 돌아누워 연인을 찾지 않더라도 집 안에 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주 얼핏 몇 시인진 알 수 없지만 이른 아침 쿠로오가 집을 나서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밥은 먹고 일하고 있으려나. 쿠로오씨가 오기 전에 뭐라도 해놓을까. 정말로 하진 않을 테지만 그런 무의미한 생각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띡,띡,띡,띡,띡 띠로롱, 찰카닥.
작게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로부터 츠키시마가 눈을 떴다. 어느새 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문이 닫히며 읏챠- 신발을 벗는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사온 건지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도 잇따랐다.
비닐봉지가 테이블에 얹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자고 있을 츠키시마를 의식해 조심히 움직이려는 쿠로오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양이처럼 사뿐히 걸음을 옮기고 옷걸이가 꺼내졌다 다시 걸리는 소리를 츠키시마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시 옷을 갈아입은 쿠로오가 저를 깨우러 올 때까지.
“케이, 나 왔어.”
“응….”
“아침부터 너무 섹시하다, 자기야.”
츠키시마를 깨우러 왔던 쿠로오는 티셔츠 한 장에 브리프만 입은 츠키시마의 맨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인형을 다리 사이에 넣은 채 접혀 있는 것을 보곤 곧장 그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츠키시마가 미간을 한 번 찌푸리는 것으로 쿠로오의 말을 무시한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몇 시에요?”
“11시 30분쯤?”
“일찍 왔네…? 일은?”
“몰라, 안 해. 그런 건 월요일의 쿠로오씨가 알아서 해줄 거야.”
“…응, 이번 주는 쉬어요.”
작년에 세워두었던 연간 매출 계획이 틀어져 새롭게 분기별로 영업과 매출 예상 보고서를 작성해야하는데, 원래라면 팀장급에서 진행되야 할 업무가 쿠로오에게 넘어왔다. 자료를 조사하고 초안을 짜는 것까지 모두 떠안게 된 쿠로오는 낮에는 외근으로, 밤에는 조사한 자료를 문서로 작성하느라 같은 직장,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중간보고까지가 목전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츠키시마였지만 그의 성격상 이래도 되는 일정이겠거니. 고개를 끄덕였다. 갈 길이 구만리라 해도 한 주 정도 주말에 쉬는 정도는 업무 효율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아침은?”
“오는 길에 도시락 사왔어.”
“아아….”
“이제 먹어야지. 츳키는 어떻게 할래?”
“음….”
“더 잘래?”
아님 나부터? 통통한 인형의 몸체 위에 얹어져 있던 츠키시마의 종아리를 주물럭거리던 쿠로오의 손이 위로 올라와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다분히 진득한 손길이 야릇하게 연한 살을 간질였고, 하체를 쭉 뒤로 뺀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다리로 발을 뻗었다. 좋다며 슬금슬금 둘 사이에 낀 공룡 인형을 빼려던 쿠로오의 종아리를 츠키시마가 발가락을 벌려 콱 꼬집었다.
“악!!”
“밥 먹어요.”
쿠로오가 꼬집힌 종아리를 부여잡고 침대 위를 구를 동안 잽싸게 침대를 벗어난 츠키시마가 안경을 쓰고 인룸용 반바지를 꿰어 입었다. 쿠로오가 출근했을 때 설핏 눈을 뜨기론 공기가 어슴푸레 잠겨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찍 나가 밥도 먹지 못하고 업무를 하다 퇴근한 쿠로오가 끼니를 계속 거르게 하기도, 혼자 식사를 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츠키시마가 대충 세수만 하고 나왔을 땐 이미 식탁에 쿠로오가 도시락을 펼쳐 놓고 있었다. 생선을 제대로 구울 줄 안다며 쿠로오가 좋아해 종종 사먹곤 하는 시장 모퉁이 가게의 것이었다. 반찬의 간이 적당해 츠키시마 역시 제법 좋아하는 도시락이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따뜻한 도시락이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좋았다. 츠키시마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보리차를 따라서 앉자마자 쿠로오가 합장으로 식전 인사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골고루 맛있게도 먹는 쿠로오의 앞에서 츠키시마는 영 젓가락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나와서는 잠이 모두 깬 것 같았는데 따뜻한 밥상의 냄새를 맡으니 왜인지 다시 나른한 기운이 몸에 퍼지며 입이 깔깔해 밥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츠키시마가 폭신한 계란말이를 몇 번의 젓가락질로 나누어 먹는 것을 본 쿠로오는 제 몫의 계란말이를 그의 밥 위에 얹어주었고 츠키시마는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먹지 않을 연어 자반의 반을 떼어 쿠로오의 도시락 위에 얹어줄 뿐이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묻어두기엔 괜한 걱정이 드는 츠키시마가 쿠로오의 업무에 대해서 묻고 회사 일에 대한 얘기를 하며 주말의 첫 식사가 느긋하게 이어졌다.
한 사람 앞에 하나의 도시락이 주어졌었지만 1.5인분을 넘게 먹은 쿠로오와 밥보다는 보리차를 더 많이 마신 츠키시마의 식사가 끝나고 나란히 세면대 앞에서 양치를 하는데 먼저 입을 헹군 츠키시마가 수건으로 입을 닦다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응?”
“수건 여분 이제 하나 밖에 없어요.”
“아….”
“빨래 해야 돼.”
밥 먹듯이 야근을 한 건 비단 쿠로오 뿐만이 아니라, 각자 그동안 바빠서 조금 소홀했던 집안일이 이제야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밀린 빨래며, 욕실 하수구 주변에 옅은 분홍빛으로 낀 물 때. 청소기를 돌린지도 일주일이 넘었나. 아마 냉장고를 열어보면 버려야 할 음식들도 있을 터였다. 주말에 회사를 안 가도 푹 쉴 수 있는 건 아니네. 잠시간 밀린 집안일을 머리에 떠올린 두 사람의 눈빛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같은 생각을 마친 중인지 거울 속의 두 사람의 눈썹이 똑같은 모양으로 내려가 있는 모습에 푸스스, 한숨과도 같은 웃음이 새어나갔다.
도시락의 뒷정리겸 분리수거를 하는 쿠로오를 뒤로 하고 츠키시마는 창문을 열었다. 중천으로 올라간 햇볕이 따뜻했다. 가만히 볕에 있다면 더울 수도 있을 정도로 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살랑이는 바람이 한결 좋았다. 츠키시마는 잠시 눈을 감고 초여름의 냄새를 맡으며 기지개를 쭉 폈다. 빨래며 밀린 청소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옅은 하늘색, 아이보리색을 띄고 있을 것만 같은 볕빛, 모처럼의 휴일에 해야하는 가사에도 기분이 좋아질 날씨.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테이블에 얹어져 있는 색색의 사탕이 츠키시마의 눈길을 끌었다. 쿠로오가 있는 영업부의 공용 테이블에 잔뜩 얹어져 있던 것이었는데 오고가며 츠키시마의 눈길이 머물렀던 것을 본 쿠로오가 한주먹 쥐어 집으로 들고 온 것 같았다. 청소기를 잠시 끈 츠키시마는 사탕 앞에 앉았다. 하늘색, 연두색, 노란색, 빨간색 두 개, 분홍색도 두 개. 하늘색은 민트, 연두색은 사과… 려나? 노랑은 레몬. 무슨 맛인지 그려져 있지 않은 채 대표적인 색과 흰색의 줄무늬로만 이루어져 있는 사탕 포장지에 고민하던 츠키시마는 빨간색과 분홍색을 집었다 놓으며 고민에 빠졌다. 딸기맛은 무슨 색 포장지려나….
빨간색을 손에 쥐고 그 겉을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향은 잘 나지 않았다. 새콩한 냄새도 조금 났지만 그 겉에 얇게 발려있는 하얀 설탕가루의 달큰한 냄새가 가장 많이 났다. 츠키시마는 조금 고민하다 빨간색의 포장을 까서 입에 넣었다. 한 번 입 안에서 굴리자 설탕가루의 맛이 벗겨지고 입 안 가득 퍼지는 향은 체리였다. 적당히 새콤하고 달큰한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맛에 츠키시마의 입술이 얇게 꾹 말렸다.
“텟츠-”
저녁에 내다 놓을 분리수거를 마친 쿠로오가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빨랫감을 구별해 놓고 있는 뒤로 다가간 츠키시마가 부름에 올려다 보는 그의 턱을 쥐고 입술을 겹쳤다. 쪽쪽 가볍게 입술이 부딪히고 사르르 웃음 짓는 쿠로오의 입꼬리가 당겨지며 살금 벌어지자 그 사이로 츠키시마의 입 안에 있던 붉은 사탕이 도록 굴러 넘어갔다.
“바지 주머니에 뭐 없는지 잘 봐요.”
“뉘엥.”
“섬유유연제 많이 넣지 말고.”
“네~ 네~”
사탕을 넘겨 준 뒤 괜히 잔소리를 늘어놓는 츠키시마에게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뒤집고 있던 양말을 마저 뒤집는 쿠로오가 10년도 더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츠키시마는 청소기를 마저 돌린 후 밀대자루에 물걸레 청소포를 끼웠다. 두 사람이 살기에 아주 딱 알맞은, 어떻게 보면 열세 평 남짓의 다소 좁은 집의 크기는 이럴 때 참 좋았다.
빨래를 돌린 쿠로오가 나왔을 때 츠키시마는 이미 바닥 청소를 끝내고 블라인드 끄트머리에 쌓인 먼지 같은 것을 닦고 있었다. 제게 체리 사탕을 넘겨 주고 난 다음 바로 딸기 사탕을 찾아 먹었는지 조그마해진 사탕을 까득 까득 씹어 먹으며 챱챱 입을 오물 거리는 츠키시마를 위해 쿠로오는 냉장고를 열었다. 쿠로오를 따라 식탁에 앉기는 했지만 원래 첫 끼니는 잘 먹지 못하는 츠키시마가 이제 입맛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아침도 계란말이 두 개 외에는 반찬도 거의 집어 먹지 않아 배가 고플 것 같았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식빵 세 장, 계란 두 알. 버터 크게 한 조각. 계란을 소금 세 꼬집, 우유 조금 쪼로록 넣어 잘 풀어 준 뒤 토스트기에서 한 번 구워진 식빵을 반으로 잘라 푹 담가 골고루 묻혀준다. 그리고 버터를 녹인 후라이팬에 약불로 잘 구워주면 순식간에 집 안에 고소하고 짭쪼름한 버터 냄새가 퍼진다. 싱크대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쿠로오의 뒤를 기웃거리던 츠키시마가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확인 한 뒤 주전자에 물을 담아 식빵이 구워지고 있는 옆에 올렸다.
“커피 두 개?”
“좋지~”
“마일드랑 오레 하나씩?”
“응.”
머그에는 쿠로오의 스틱 커피, 유리잔엔 츠키시마가 마실 우유. 우유를 따르던 츠키시마는 적당량을 따르고 다시 냉장고에 팩을 넣으려다 남은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다시 잔에 남은 우유를 더 부었다. 그대로 들고 움직이기엔 찰랑이다 쏟아질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한 모금 마신 츠키시마가 두 개의 잔을 식탁을 가져갔고, 계란 옷을 입은 식빵에 설탕과 연유, 딸기잼을 뿌린 쿠로오가 뚝딱 만들어진 프렌치 토스트 접시를 뒤따라 들고 왔다.
아직 닫지 않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면 덜겅, 덜겅, 덜겅. 돌아가는 세탁기가 내보내주는 섬유유연제 냄새와, 츠키시마가 젓가락으로 집어 열심히 먹고 있는 프렌치 토스트의 버터 냄새, 쿠로오의 믹스커피 냄새가 각기 풍겨왔다.
호로록 커피를 마시던 쿠로오가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면 츠키시마가 식빵 끄트머리를 쿠로오의 입가에 가져다 대 쿠로오가 한 입씩 받아 먹었다. 적당히 바삭하고 설탕이 씹히는 단 프렌치 토스트는 이제 간을 보지 않고도 츠키시마의 입맛에 딱 맞도록 만들 수 있는 쿠로오의 소소한 자부심 중 하나였다. 역시나 입에 들어오는 토스트는 오늘도 딱 츠키시마의 입에 맞을 맛이라 쿠로오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우유도 없고, 이제 식빵도 없고. 계란도 없던데.”
“스틱 커피도 얼마 없어요.”
“저녁에 장보러 갈까.”
“그래요.”
“저녁은 냉장고 있는 거 다 털어서 스키야끼 해먹자.”
“네.”
다 먹은 그릇을 씻고 마트의 전단지에서 할인 품목을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세탁기의 종료음이 들려왔다. 아쉽게도 두 사람이 복작거리며 함께 빨래를 널기엔 협소한 곳이라 빨래는 너는 것은 쿠로오에게 넘긴 츠키시마가 침대에서 공룡인형을 들고 와 품에 안고 소파에 기대 앉아 TV를 틀었다.
돌아간 것에 비해 금세 빨래를 다 널고 옆에 온 쿠로오가 그 옆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 꾸벅 츠키시마의 고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중천을 한참 넘어선 햇빛에 적당한 배부름에 얼추 할 일을 해두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에 TV에서 흘러나오는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의 단조로운 억양에 쿠로오 역시 눈이 가물거렸다.
“들어가서 자자.”
“응….”
은근슬쩍 츠키시마가 껴안고 있는 공룡 인형은 소파에 두고 가려 한 쿠로오였지만 쿠로오가 소파에 올려놓은 인형을 다시 소중히 안고 침대로 향하는 츠키시마의 모습에 쿠로오는 조금 혀를 찼다.
달콤한 낮잠이 이어지고, 다시 두 사람이 침대에서 벗어난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훌쩍 넘긴 저녁이었다. 이제 밤으로 접어드는 늦은 저녁에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원래는 좀 더 일찍 눈을 떠 장을 보러 갈 예정이었지만 옷 속으로 들어오는 쿠로오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오랜만이니까 가볍게 한 번 정도는… 하며 쿠로오를 받아들인 츠키시마였지만, 가볍게 한 번이 끝난 직후 후희를 즐기다 어느 포인트에선지 다시 달아오른 쿠로오 때문에 이어진 두 번째가 길었다.
“스키야키 해먹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네….”
“누구 덕분에.”
“저녁은 간단하게 먹을까?”
“컵라면?”
“흠….”
“별로?”
“경단밥 해줄게. 그거랑 같이 먹자.”
경단밥은 한입 사이즈로 만든 아주 작게 만든 주먹밥을 두 사람이 이르는 말이었다. 참치와 마요네즈에 무 간장 장아찌를 다져 잘게 부순 김을 밥과 섞어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되는 작은 사이즈로 빚은 게 전부인. 예전, 츠키시마가 자꾸만 끼니를 거르는 것이 못마땅했던 쿠로오가 만들어 준 것이었고 그건 먹는 행위 자체가 귀찮았던 츠키시마에게 아주 잘 들어 맞는 것이어서 하나 두 개씩 집어 먹다 보면 어느새 입이 짧은 츠키시마도 밥 한 공기 이상 되는 양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최근엔 통 밖에서만 사먹다 보니 먹지 못했는데, 그 맛이 생각난 츠키시마가 솔깃하며 반응했다. 그래봤자 끄덕이는 고갯짓이 조금 크게 끄덕인 정도였지만 귀엽다며 쿠로오가 츠키시마를 끌어안았고 츠키시마는 질색하며 달라붙는 쿠로오의 귀를 깨물었다.
“밥 먹고 쓰레기 버리고 산책 갈까.”
“장은 내일 봐야겠네요.”
“내일 빨래 개면 또 한 번 돌려야 돼.”
“에-”
“수건만 널었는데 건조대 다 찼어. 까만 거 빨아야지.”
“오늘 날씨 좋아서 벌써 다 말랐을 거 같긴 해요.”
“그래도 내일 일요일이라 좋다.”
“내일 되면 싫다고 할 거면서.”
“방학하고 싶다.”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밥을 조물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의미 없이 흘러가는 사이 토요일 밤이 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