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 더우니까 서늘하게 봌앜 마음앓이하는 게 보고싶다...(의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로 갈라졌지만 나름 갈림길에서도 꾸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인간관계에서 당연한 건 없듯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치부해서 생기는 마음 앓이.

 

보쿠토의 곁자리가 아카아시였던 게 당연했던 2년. 보쿠토의 고등학교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 역시도 당연히 보쿠토 하면 아카아시, 아카아시 하면 보쿠토가 떠오르듯 바늘과 실 같던 두 사람도 무대가 달라지는 순간 자연히 접점도 시간이 갈수록 삭아질 테니까.

 

아카아시가 아직 학생이고 보쿠토가 사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대가 갈라진 첫 1년은 그럭저럭 몰랐겠지만 시간과 경력이 벌려놓는 차이가 점차 드리워져서 어느 순간 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아카아시가 먼저 그 그림자를 알아차리게 되는 거. 보쿠토의 일거수일투족을 섬세하게 살피던 건 늘 아카아시의 몫이었고, 버릇이 되버린 루틴에 아카아시의 신경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보쿠토에게로 향하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그를 예전처럼 즉시 케어해줄 수 없다는 게 우선 작은 거슬림이 된 거.

 

아카아시 본인에게도 나름의 자부심이었던 보쿠토의 케어 담당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에 보쿠토가 제게 미주알고주알 자주 연락하거나 찾아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하고 있었는데 점차 아카아시가 모르는 보쿠오의 장면이 늘어나는 것에 조금 초조해지며 아카아시의 머릿속 가장 큰 지분이 보쿠토가 되고 작은 거슬림이었을 뿐인 가시가 아카아시도 모르게 뾰족뾰족 날을 세우며 단단하게 자리잡겠지. 단순한 투정, 힘든 일 하나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아카아시도 자신의 무대에 서있다보니 가끔은 버거운 날도 생길 거고.

 

스스로도 왜 이렇게 보쿠토한테서 신경을 끊을 수가 없나 싶지만서도, 그래도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 중 하나니까. 신경을 안 쓸 수 없게 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혼자 닫는 생각이지만, 은연 중에 보쿠토에게서의 자신의 자리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은 상태.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거야. 보쿠토가 힘들고 외로울 때만 자기에게 연락하는 것 같다는 걸. 유난히 신경 쓰는 경기 전 업무 시간을 쪼개가며 그와 연락했지만, 정작 그가 우승하고서는 소식이 없을 때. 그의 소식을 다른 입으로 들었을 때. 그냥, 조금, 허탈해져 버리는 거.

 

그에 대한 좋은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한참동안이나 잠잠한 그와의 연락에 아카아시는 그제야 조금 변해가는 삶의 우선 순위를 받아들이기 시작해. 좋은 소식도 이제 같은 소리만 맴돌게 됐을 때쯤에나 연락이 온 건 고등학교 때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축하 겸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연락이었고, 그 연락책도 보쿠토가 아니었음에 아카아시는 전화기를 왼쪽 어깨로 고쳐들며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말해. 이번 달엔 원고 마감이 촘촘해서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아쉽지만 불참하겠습니다.

 

마감이 촘촘해 밥 먹듯 야근을 하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얼굴을 비췄을 자리지만 이제 굳이- 그래야하나 싶어서. 이제야 겨우 업무 프로세스가 자리잡혔고 일이 몰리는 시기에 나도 나를 신경써야지. 시무룩한 보쿠토의 표정이 잠시 어른거려 야근도 몸 생각하며 하라는 걱정스런 멘트를 건성으로 흘리며 전화를 끊은 아카아시. 생각을 지우듯 빨간 수성펜을 휘적휘적 허공에 돌린 뒤 아카아시는 방의 불을 켜고 스탠드만 켜 빛이 눈 앞의 원고만을 비추게 하고 다시 하던 일을 해. 이제, 눈 앞의 일에 집중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입을 통해 들었던 소식들이 또 다른 입으로 제게 전해지는 목소리와, 인터뷰로 들었던 120%였다던 그의 활약상. 예전이라면 햇살같았던 환한 웃는 얼굴이 따갑게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아서. 그만 눈을 돌리기를 택하는 아카아시. 공을 만지던 곳이 아닌 펜을 쥐는 곳에 굳은 살이 자리하기 시작하는 손은 이제 그에게 토스를 올리던 감각은 이미 예전에 잊은 듯 한데, 그 때의 감정을 잊지못한 아카아시의 머리만 과거를 과거로 흘려주면 편해질 일이었어. 결국 이렇게 마음에 불편하게 가시가 자란 것도 자승자박이려니. 묶은 사람이 풀어야 마땅한 거겠지. 괜히 시큰해지는 콧잔등을 펜 끄트머리로 쿡쿡 긁은 뒤 아카아시는 눈 앞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거.

 

빠르게 흘러가는 스포츠계의 시간을 겪어본 아카아시도 알아. 그러니까 이해하는 거야. 보쿠토가 이제 전만큼 제게 의지할 일도, 제가 도움이 될 일도 없을 거고. 변한 무대에서 관계가 변하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전과 같은 포지션임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걸. 상처받고야 알게 된 거긴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어디야. 아카아시는 이제 가뭄에 콩나듯 연락이 오는 보쿠토가 우는 소리를 해도 전처럼 온 마음이 아프지도, 도와주지 못해 조바심이 나지도 않아. 보쿠토를 끌어올려줄 사람은 그의 근처에도 무수히 많을 거고 그건 저보다도 더 나은 방식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카아시가 먼저 받아들였던 관계의 변화는 그 후에야 보쿠토가 느끼겠지. 점점 짧아지는 연락에, 끊어지는 텀이 빨라지는 대화창에, 먼저 연락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는 지도 알 수 없어지는 아카아시의 소식에. 한참을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아카아시는 어디로 간 건지 희미해져있고 닿으려고 해봐도 뭔가 둥실뜬 것 같은 아카아시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보쿠토가 어느날 투정해. 아카아시 변했어! 이제 받아주지도 않고!

 

오랜만에 연락을 했더니 안부만 겨우 전했을 뿐인데 전화할 곳이 있다며 끊어야겠다는 아카아시의 말에 터져나온 불만이었는데 아카아시의 반응이 이상해. 잠깐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아니, 아닌 건 아니고 있긴 한데- 하고 말을 바꾸는 보쿠토에 끊어졌나 싶을 정도로 정적이 이어지던 수화기 너머로 하하, 힘없는 웃음 소리가 들려. 오랜만에 듣는 아카아시의 웃음 소리에 보쿠토가 다시 볼멘소리로 투정하자 아카아시가 한숨 쉬듯 대답해. 제가 왜요?

 

아카아시는 아카아시니까. 아카아시는 늘 그랬잖아. 바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소리를 하지 못한 채 이 번엔 보쿠토의 정적이 이어지자 따라 침묵했던 아카아시가 다시 말을 이어. 보쿠토씨, 힘들 때만 연락하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이제 굳이 제가 아니라도 보쿠토씨 곁에 더 좋은 조력자가 얼마든지 있잖아요. 굳이 제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서운해하실 일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들어봤자,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보쿠토가 맞는 말이긴 한데 생각해보니 미안하기도 미안해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하니 다시 웃은 아카아시가 알아요. 하겠지. 그런데 보쿠토씨, 그러려고 그러신 게 아닌 건 알지만 보통 그런 걸 감정쓰레기통이라고 불러요. 모르시는 거 같아서. 지금은 제가 시간이 안되서 정말 죄송해요.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기운 내시고요. 빠르게 말을 정리하고 끊은 아카아시와의 통화. 보쿠토는 전화가 끊어지는 화면을 멍하게 보고.

 

보쿠토는 억울해 죽을 것 같지. 고등학교 때처럼 감정표현 솔직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여기저기서 압박은 엄청 받고, 본인도 학생 때랑은 다르다는 거 아니까 고쳐야한다는 건 알겠는데 천성은 그게 못 되고. 이럴 때 늘 버팀목이 되어줬던 아카아시가 늘 돌아가 마땅한 집 같은 존재였는데. 이런 거... 아카아시한테만 하는 건데. 이렇게 기대면 아카아시는 늘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주곤 했으니까. 내가 필요로 해야 네가 곁에 있었으니까. 근데, 그게 감정쓰레기를 네게 버리던 건 아니었는데. 걱정하는 목소리가 한결 같아 좋아 그랬던 건데. 근데 그게 이제 안된다고 하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 아카아시? 하고.

 

보쿠토가 프로가 되면서 주변 실력도 모두 프로니까 이제 아카아시가 학생 때 만큼 자기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도 마음 쉴 곳은 부모님 보다 편한 것이 아카아시였던 보쿠토였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로 인해 주변이 반짝 반짝 빛나고 좋은 추억과 경험으로 꾸며져도 보쿠토 마음 속에 돌아가야 하는 보금자리 같은 집 격인 아카아시. 세련되지 못해도 손 때 묻어 투박한 집.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자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집이 아카아시의 의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보쿠토가 멀어져갈 때에도 그냥 아카아시는 계속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일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보쿠토는 제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부터 풍파에 모래로 부서지다 결국 아카아시가 떠나 자리만 남기고 사라진 제 마음 속 보금자리를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보쿠토에게 아카아시는 아카아시였다. 이유 없이도 보쿠토에겐 아카아시가 필요했다.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면 너무 어렵지만. 사람에게 집이 필요한 것처럼. 공기가 필요한 것처럼 그냥 계속 아카아시와 함께이고 싶었을 뿐이라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동안 잠잠하다가 걸려 온 저녁쯔음의 보쿠토 전화. 사무실엔 오랜만에 아무도 없었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던 아카아시가 네. 전화를 받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카아시! 하고 기운차게 부른 보쿠토가 머뭇거리며 묻는 거. 밥은, 먹었어? 뭐지... 이 난데 없는 질문은. 하면서도 네, 지금 회사에서 도시락이요. 대답하자 정말 그게 궁금했을 뿐인지 아카아시에 대한 것만 묻고 끊어진 전화. 뭐야. 정말. 영문을 모르겠네 싶으면서도 점점 다시 연락하는 빈도가 늘어나며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지자 슬쩍 간지러워지는 마음에 입술을 꾹 물며 다시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는 아카아시.

 

똑똑한 아카아시도 눈치채지 못했던 건 아무 필요 없어도 그에게 온통 신경이 쏠렸던 것도, 돋아난 가시도 아카아시에게 보쿠토가 사랑이었다는 거였으면 좋겠어. 그 마음을 깨닫는 건 갑작스레 시작된 여름. 여름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보쿠토를 보고나서. 다른데 가있던 신경을 부서진 보금자리를 되찾기 위해 보쿠토가 다시 아카아시에게로 당연하게 여겨 공들이지 않았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니 자연스러워 잊었던 마음이 존재를 알린 보쿠토 역시 그 쯤 마음을 깨닫고. 왜 이런 중요한 걸 잊고 살았지 싶을 만큼 아카아시에 대한 마음이 넘쳐흐를 때 무작정 찾아간 아카아시네 집.

 

괜찮으면 진짜 잠깐만,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안경 쓰고 편하게 반팔티 입고 있는 아카아시가 놀라서 나오고 그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고 좋아서 들어오라는 말도 못하고 여긴 이 시간에 웬일이냐 묻는 아카아시를 끌어안아버리는 보쿠토. 이르게 열대야가 찾아오는지 습하고 더운 밖과 달리 에어컨을 틀어놔 차가운 공기와 서늘한 아카아시를 와락 당겨 안으니 맨발로 현관에 있던 운동화를 밟고 서서 끌어안긴 아카아시가 확 느껴지는 여름의 온도에 사랑을 깨닫는 거.

 

아, 진짜 오랜만이다 아카아시. 너 너무 바빠. 밥 제대로 먹고 있어? 왜 이렇게 마른 거야. 그냥... 그냥 진짜 잠깐 얼굴만 보려고 와봤어. 하고는 다짜고짜 끌어안을 생각은 없긴 했는데 자기도 놀람+부끄러워서 손 떼고 나중에 밥 같이 먹자고 하고 아직 놀라 있는 아카아시한테 머쓱하게 웃고 빈 손으로 오기 뭐 하니까 그냥 바리바리 사온 편의점 주전부리 건네주고 휭 떠나는 거. 보쿠토와 함께 따라 들어온 여름 바람이 너무 더워서 갑자기 더워진 거라고.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등을 대며 입으로만 뭐가 이렇게 갑자기.... 하고 중얼거리는 아카아시.

 

그러면서 다시 이어지는 연락은 옛날과 다른 온도가 아니라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의 양상으로 이어졌음 좋겠다. 그러다 아카아시 말라서 고기 먹어야 된다고 고기 사들고 와서 아카아시네서 밥 먹고 뒷정리하는데 좁은 집에서 둘이 움직이다 서로 뒤에 있는 줄 모르고 돌아섰다가 쿵 부딪히고 가까워진 거리에서 아카아시가 죄송- 하고 올려다보는데 아카아시 넘어질까봐 반사적으로 잡아준 보쿠토랑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둘 다 또 놀래고. 두근두근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에서 아카아시가 먼저 눈 돌리고 게임이나 만화였으면 이 다음에 키스인데, 하는 생각하고 의식해.

 

내일은 연습하기 싫다- 하고 괜히 가기 전에 투정부리는 척 아카아시 또 끌어안는 보쿠토나, 힘내라고 하면서 토닥토닥 더 오래 등 도닥여주면서 안 도망가는 아카아시도 보고 싶고 둘이 썸도 길게 타면서 이전이랑 다른 마음 앓이 하는 것도 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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