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츠키 동거하다가 권태기 와서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거 보고 싶다. 사귈 때 서로 성향이 많이 다른 걸 알고 있어서 배려하고 양보하다보니 연애하면서 싸운 적도 거의 없고 막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연애보다는 담담하고 차분한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이 동거하면서도 그 고요한 연애가 지속되다보니 쿠로오한테 먼저 권태기가 온 거. 그러다가 쿠로오가 지방으로 장기 출장을 가야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걸 빌미 삼아 각자 시간을 가지자고 하는 제안하는 게 보고 싶다.
그 때의 쿠로오는 권태기가 한참 절정에 치달았을 때라서 거의 헤어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걸로. 지방에 두 달 정도 있어야 돼서 한 달 단위로 계약 하는 집 얻어서 나가게 된 건데 츠키시마는 간접적인 이별통보를 눈치 채지 못한 게 아닐 것임에도 늘 그래왔듯 차분하게 알았다고만 할 뿐이라 그 반응도 넌덜머리 나는 쿠로오.
오랜만에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게 홀가분한 쿠로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오히려 그리워져서 후회하는 게 보고 싶다. 변함없이 잔잔한 츳키가 지루해져서 권태기가 온 거니까 바로 츳키가 보고 싶은 건 아닐 테고. 사람 습관이 무섭다고 아주 사소한 생활의 곳곳에서 츳키의 빈자리를 느껴가면서 허전해 하는 거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해져있었는데 그게 한 순간에 바뀌니까 전반적으로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은 생활을 하는 거.
이를테면 문단속 같은 소소한 거에서부터. 언제나 쿠로오가 먼저 출근하고 나서 츳키가 나가니까 쿠로오가 문단속 할 일이 없었는데 따로 사니까 본인이 해야 하는데 그게 습관이 안 들어서 그냥 문 연 채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문 잠가야 해서 몇 번 지각할 뻔 하는 데에서 불편함을 느낄 것 같아.
언제나 오던 연락이 오지 않는 것도 좀 허전하지 않을까. 점심시간 마다 오던 연락이 오지 않으니 조용한 핸드폰을 괜히 자꾸 확인한다던가. 매 시간마다 연락이 오는 게 귀찮아서 답장하지 않던 것도 부지기수였는데 오던 시간에 연락이 오지 않는 것도 빈자리로 느껴질 때가 있겠지.
같이 살다가 따로 살게 되면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음식 양 조절. 두 사람 분의 음식을 하는데 익숙해져서 조금 해야지 생각해도 생각만큼 그게 잘 안 되는 거지. 혼자 먹을 걸 알고 있는데도 습관처럼 2인분의 요리를 하고 아차 싶은 거. 혼자 먹을 만큼 음식을 하려면 얼마정도 해야 하는지 감도 잘 안잡히고 하다보면 어느새 많아지는 음식 양에 전에는 한 번 먹을 만큼 했으면 혼자 살면서는 한 번 하면 양 조절이 안돼서 전날 만든 음식 다음날에도 먹어야 하는 게 좀 불편할 것이다.
방청소를 하는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중에 짧고 가느다란, 쿠로오가 좋아하던 옅은 레몬색의 머리카락이 없는 게 의식되고. 장을 보러 가서 자기도 모르게 어느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케이-하고 부르며 뒤를 돌아보는 일이 반복 되면 점점 생활의 불편함이나 허전함이 츳키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면서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츳키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쿠로오.
권태기가 와서 지루함을 핑계로 츳키한테 틱틱대고 괜히 까칠하게 굴던 것부터 후회했으면 좋겠다. 요리도 처음에 본인이 더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는 거니까 자진해서 저녁 당번 하게 된 거였는데 가끔은 네가 하는 게 어때 하면서 괜히 짜증내고 쿠로오가 예민하게 구는 거에 츳키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짜증나서 대화 끊었던 거나. 더 잘 생각해보면 쿠로오가 안 보려고 해서 안 보인 거고 안 느껴진 거였지 쿠로오 권태기인거 뻔히 보이니까 츳키 나름대로 노력하려던 게 그제야 인정하게 되면서 괴로워했으면. 츳키는 점점 차가워지는 자신에게 더 사근사근하게 말 많이 걸어주고 스킨십도 하려고 했는데 그걸 귀찮아했던 건 본인이었으니까.
쿠로오가 연애 초반과 변함없이 무던한 츳키한테 질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츳키는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쿠로오가 그냥 다 무시한 거였지. 원래 그런 걸 잘 못하던 애가 계속 몸 붙여오는데 쿠로오가 자기한테 안긴 츳키 팔 피곤하다고 풀어 낸 것까지 생각하고 진짜 미안해지는 쿠로오. 사과 받을 일이 아닌데 머쓱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던 츳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면 자기 자신 때리고 싶을 것이다. 권태기를 핑계로 참 연인에게 못할 짓을 했던 쿠로오 좋다. 허허. 땅을 치고 후회해라 후회공이여.
먼저 연락할까도 싶었는데 어쩐지 그건 또 자존심 상해서 한 달 불편해하고 한 달 후회하다가 두 달의 시간을 꽉 채우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서 다시 츳키한테 잘못했다고 나는 여전히 네가 좋다고 마음먹는 쿠로오지만 다시 마주한 츠키시마가 묘하게 자기랑 눈 마주치는 거 피해서 쿠로오 마음 좀 졸였으면. 떨리고 반가운 마음으로 집 문을 열고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는데 놀란 것처럼 보이는 츳키가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는 건지 아닌지도 모를 반응을 보여서 머쓱해지는 쿠로오.
너무 츳키가 보고 싶어서 돌아오는 내내 보면 꼭 끌어안고 싶었는데 어색하게 거리를 두는 츳키 행동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지은 죄가 있으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츳키가 내준 찻잔만 만지작거리는데 창문 밖만 보고 있던 츳키가 말을 꺼냄. 당신 말이 맞았어요. 당신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하고.
그 말에 놀란 쿠로오가 찻잔에서 츳키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여전히 츳키는 쿠로오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피해 제 찻잔으로 시선을 떨구고 말을 잇겠지. 내 일상에서 당신이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당신의 빈자리가 큰 것도 아니었다고. 당신 말대로 우린 그냥 같이 살기만 할 뿐 서로의 영역에 그렇게 많이 침범해있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고.
쿠로오는 생각보다 자신의 생활에 많이 녹아있던 츳키의 빈자리가 사무쳤었는데 그 반대를 말하는 츳키의 목소리에 점점 마음이 무거워짐. 자기 생각만 할 줄 알았지 츳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헤아리지 않으려한 권태기의 공백은 상당한 것이었겠지.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 츳키에게 준 상처는 컸고.
막연하게 먼저 변했던 자신만 돌아가면 될 줄 알았는데 자기가 없던 두 달 동안 아무렇지 않았다는 츳키가 낯설게 느껴짐. 쿠로오는 츳키를 사랑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두 달이었는데 그 두 달 동안 츳키는 자신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려준 꼴이 된 거니까. 어쩌면 쿠로오가 제멋대로 군 것도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도 자신에게 살가운 츳키의 반응에 츳키는 계속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게 한결 같을 거라고 자만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름. 그걸 새삼 깨달으며 쿠로오 마음이 가라앉는데 츳키의 말은 계속 이어짐.
당신 말대로 당신을 사랑해서 계속 같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서로가 익숙해진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서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닌데 같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그럼 이제 우리가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곤 웃는데 쿠로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음. 츳키가 한 말은 전부 자기가 서로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면서 자기 합리화적인 변명으로 늘어놓았던 그 말들을 그대로 되돌려 준 것 뿐이니까. 이제와 자신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기에는 먼저 이별의 물꼬를 튼 쿠로오는 츳키를 붙잡을 명분이 없기도 했고.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정적이 내려 앉음.
한참 뒤 정적을 깬 츳키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음. 나에게 굳이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그래도 내 옆에 있는 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절실하게 내게 당신이 없으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건 없었지만. 나는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고개 숙인 츳키가 떨리는 숨을 내뱉음. 미안해요. 이런 사족은 필요 없을 텐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피식 웃는 츳키 앞에 쿠로오 앉아서 츳키 허리 끌어안고 쿠로오 그제야 싹싹 빌어서 다시 행쇼해...
미안하다고, 나는 네가 없어서 너무 허전하고 너 없이 사는 게 힘들었다고 쿠로오가 말하면 자기가 짐이 아니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고나서 아니라는 대답 듣고 츳키 그제야 안심해서 펑펑 우는 거 보고 싶다. 진짜 애기처럼 눈 꼭 감고 흐윽흐윽.
그리고 역시 후회공은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괴로워해야 한다. 본인이 지은 죄는 열 배로 다시 되돌려 받아야지. 이별의 끝을 몰랐으면 몰랐지, 쿠로오의 마음이 식어가는 과정을 감내했던 츳키가 받았던 상처는 아무리 쿠로오가 전처럼 돌아왔다고 해도 한 순간에 잊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자신이 줬던 상처에 움츠러든 츳키 보면서 아주 속 한 번 제대로 썩는 거 보고 싶다.
안방에서 같이 자던 것도 쿠로오가 권태기가 시작되고 생활 패턴이 조금 다른 걸 핑계로 각자 방을 따로 나눠서 생활했던 걸로 하고 싶다. 츳키는 자신이 계속 손을 내밀어도 거부당하고 쿠로오가 짜증을 내는 거에 대화를 하고 싶어도 쿠로오가 피곤하다고 대화 끊고 종국에는 쿠로오랑 각방 쓰게 되면서 서서히 쿠로오를 하나씩 체념해가던 거라 쿠로오가 각자 시간을 가지자고 했을 때 놀라지도 않고 받아들였던 거.
자기감정을 자각하고 표현하는데 서툰 츳키에게 연애를 가르쳐준 것도, 좋아하는 마음이나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르쳐 준 게 쿠로오라서 츳키는 쿠로오가 좋은 것도 좋은거지만 먼저 이별 같은 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건데 사람 마음이 식는 과정이 이렇게나 차갑다는 것도 쿠로오가 가르쳐 주게 된 셈.
쿠로오한테 거부당하는 게 상처였고 다시 상처 받고 싶지 않은 츳키는 쿠로오가 잘못을 빌었어도 먼저 쉽사리 쿠로오한테 다가가지 않아서 쿠로오 속상한 게 보고 싶다. 회사가 바빠서 피곤해서 표정이 좀만 안 좋아도 츳키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게 확연히 줄어드는 거. 조금 쿠로오 표정이 안 좋을 때면 일찍 방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거나 쿠로오 눈치 보고.
피곤하다고 츳키가 안기는 것도 밀어낸 전적이 있어서 스킨십에 있어서도 전부 다 처음 사귈 때처럼 조심스러워 지는 것도 좋다. 용기내서 먼저 안았는데 피곤하다고 밀려난 거 진짜 충격이었을 테니까 쿠로오가 자기한테 먼저 다가오는 게 아닌 이상 쿠로오 몸에 손 잘 안대려는 츳키. 옆에 앉아도 권태기 오기 전처럼 붙어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거리 두고 앉는다거나 쿠로오가 먼저 하는 스킨십에도 어색해 하는 거. 밥 먹고 텔레비전 보다가 손끼리 닿아서 츳키 손잡아다 깍지 끼는데 츳키 시선이 조금 오래 맞잡은 손에 가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츳키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다가 쿠로오가 자꾸 캐물으니까 그냥, 이렇게 손 잡는 거 오랜만인 것 같아서요. 해서 쿠로오 양심 엄청 찔리고.
쿠로오한테 받았던 상처들이 뒤늦게야 후폭풍으로 밀려온 츳키가 계속 자기방어적인 태도로 쿠로오를 대하고 그거에 쿠로오가 상처 받아하는 것도 보여서 안 그래야지 싶어도 자꾸만 언제 다시 쿠로오의 마음이 식을 줄 몰라서 불안해 하는 츳키 점점 예민해졌으면. 결국 그런 자기 자신이 싫은 츳키가 짜증나는 마음에 쿠로오한테 헤어지자고 했으면 좋겠다. 그걸 받아주고 해결해 주는 게 쿠로오의 숙제.... 지지고 볶고 싸우고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