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그웬님








뒤척 뒤척. 츠키시마는 눈을 감은 채 잠들기에 편한 자세를 찾으려 몸을 움직였다. 뒤척 뒤척. 꼼지락 꼼지락. 옆으로도 누웠다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도 보았다 이불을 끌어 안아도 보고 베개를 고쳐 베어 보아도 츠키시마는 이내 어딘지 불편한 기분에 자꾸만 자세를 바꾸었다. 쉽사리 들지 않는 잠에 츠키시마는 다시 옆으로 누워 품 안 가득 이불을 끌어안고 있다 다시 제대로 이불늘 덮고 눈을 떴다. 


깊고 달게 잠들어 본 적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시험 공부로 인해 평소보다 잠을 줄였고 그 후에는 여름 방학의 합숙으로 인해 바뀐 잠자리에 낯설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리곤 무더운 기온에 조금만 지나도 땀이 배어나와 불쾌한 기분에 잠들지 못했다. 잠이 부족한 머리는 멍하고 눈은 아플만치 뻑뻑했다. 졸립다. 몸 조차도 졸리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나른하건만 어딘지 부산스럽고 정신 없는 머릿속만이 또렷하게 분주했다.


잠자리에 들려 침대에 누운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츠키시마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려 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방 안의 사물들을 또렷히 구분할 수 있었지만 안경을 벗은 눈으로 시곗바늘까지 분간하기는 어려워 츠키시마는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지금 잠들어도 내일 일어날 시간까지 잘 수 있는 건 다섯시간이 채 안 되었다. 잠깐 동안 비친 액정의 불빛에 시린 눈을 다시 감은 츠키시마의 입술 새로 옅은 한숨이 비집고 나왔다. 


시각이 차단되자 들어차는 암흑에 절로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사실은, 그랬다. 이리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츠키시마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의식의 흐름 끝에 서있는 한 남자가 츠키시마의 잠을 방해했다. 점점 강도를 높여가는 배구 연습은 몸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 남자의 생각에 츠키시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감은 눈으로 보이는 단 한가지의 색을 닮은 남자. 쿠로오 테츠로. 자율연습을 권하며 손짓하던 것부터 시작해서 블로킹의 기술을 가르쳐 주던 도쿄 합숙에서 만났던 네코마의 주장. 맡고 있는 포지션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자연스레 그의 조언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랬다. 제3체육관에서 연습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실행에 옮길 때 함께 연습했던 후쿠로다니의 사람들까지도 생각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랬던 것이 점점 포커스가 좁혀져 카라스노의 사람들의 다른 포지션에서도 그가 떠올랐다. 유연하고 재빠른 니시노야의 리시브에서도 아사히의 힘 있는 스파이크에서도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괴짜 속공에서도 제각기 다른 모습의 쿠로오가 생각났다.


배구에 관련해서만 떠오르던 쿠로오의 생각은 그칠 줄 모르고 츠키시마의 안에서 나날이 영역을 넓혀만 갔다. 쉬는 시간이면 멍해지는 제 눈 앞에서 흔들리는 야마구치의 손 위로 섬세하고 예쁜 모양을 가지고 있던 쿠로오의 손이, 저도 모르게 그를 쫓고 있던 시선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넉살 좋게 웃어주던 얼굴이 따라 생각났다. 이렇게까지 온종일 누군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하루 온종일을 그의 생각으로 보냈다는 자각이 들면 츠키시마는 그만 아연해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추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는 자각은 더 그의 존재를 신경쓰이게 하는 것이었다. 


딱딱하고 날카롭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유연한 몸 동작과 차가워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제법 섬세한 구석이 있던 남자. 한껏 불량해 보이다가도 반듯하고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것 같아도 느물거리는 말 뒤에는 제법 약삭빠른 계산이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한 유형의 사람. 그래서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기엔 배구부에 입부한 뒤로 제 주변에 무난한 타입의 사람이 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정과 반만 있을 뿐 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스무고개를 하듯 츠키시마는 머릿속에 들어앉은 쿠로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헤맸다. 


왜 자꾸 생각나는 거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단 두 번의 합숙. 한달도 되지 못하는 짧은 시간만을 알고 지냈던 사람이 이렇게 깊게 뇌리에 박혀 아주 머릿속애 살고 있는 것 마냥 생각이 난다는 건 너무 비상식적인 거 아닌가. 하지만 그 비상식적인 일이 이미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 심란했다.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어느 틈엔가 그의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다. 소꿉친구라고 하던 푸딩 같은 머리색을 한 작은 세터의 머리를 쓰다듬던 모습.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는 모습. 하물며 밥을 먹는 것 하나까지 신경 쓰던 것들. 보통 소꿉친구가 그렇게까지 자잘한 것까지 옆에서 다 보살펴주나. 저에 한해서라면 극성맞은 야마구치도 밥 먹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았는데. 


츠키시마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가장 어두운 밝기로 조정한 뒤 메시지함을 들어가보았다. 처음 합숙이 끝나고 분위기에 휩쓸려 교환 당한 번호였다. 그냥 그 때뿐인 친목도모로 인한 번호교환이라 교환에서만 그치고 더 연락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 밤 쿠로오에게서는 잘 도착했느냐는 메시지가 왔다. 전체 문자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꾸를 하지 않기에도 신경이 쓰여 보낸 간결한 답장에도 몇 차례 시덥잖은 대화가 이어졌다. 보내는 이의 음성이 들릴 것만 같은 문자를 거슬러 올라가며 읽었다. 


그리고 언제 찍혔는지 모를 보쿠토와 쿠로오의 사이에 있는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열어보았다. 그 때는 몰랐지만 멀리에서 보기에는 후배를 괴롭히는 선배들 같아 보였던 모양이라며 쿠로오가 웃으며 보내준 사진이었다. 질색하는 표정의 저와 청량하게 웃고 있는 쿠로오의 모습을 츠키시마는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길고 가는 눈이 웃으면 호선을 그리며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제 학교의 후배를 대할 때 장난스럽게 웃으면 천진한 얼굴로 바뀌었다. 제 소꿉친구를 볼 때 짓는 미소는 그것과는 다른 또다른 온도로 다정함을 띈다. 참 다양한 웃는 얼굴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보이는 표정마다 온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신기했던가. 한참 연상으로 보이다가도 한없이 꼬마아이처럼도 보이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말랐어.’



아마도 합숙이 끝나는 날의 기념으로 고기 파티를 한 날의 사진이었을 것이다. 고기며 구운 채소들을 수북히 담아와 건네주며 팔 이곳 저곳을 쥐어 확인하던 쿠로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제 손목을 쥔 손은 멀리에서 보았을 땐 훨씬 커보였는데 가까이에서 제 손과 비교하여 보자니 그리 큰 손은 아니었다. 저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정도이려나. 손가락이 길고 곧게 뻗어 있어서 그래보였던 것인지. 거스러미 하나 없이 뭉툭하고 동글동글하게 잘 다듬어진 손가락 끝이 참 예뻤다. 문득 손바닥을 마주해서 크기를 비교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크려나. 보기에는 예쁘던 그 손은 마주 잡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보기처럼 부드러울까. 공에 많이 닿는 손이 굳은살이 박혀 단단할까. 


제 팔뚝과 손목을 쥐었던 손길은 제 허리와 배도 스치고 지나갔었다. 장난을 치는 와중에 보쿠토에게 떠밀려 가까이 다가왔던 얼굴에 잠시 호흡을 잊었었다. 생각보다 입술이 얇았지. 아무런 동작이 없었던 휴대폰의 액정이 까맣게 꺼지는 것도 모른 채 어느새 눈이 감기고 스물스물 잠이 오는 머리가 무거워지며 의식이 츠키시마의 컨트롤을 벗어나려 했다. 손을 쫙 펼치면 두 손으로 허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며 과장되게 놀라는 척 하던 손을 깍지 껴 잡고 그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에 키스하는 상상. 입술이 맞닿는 이미지가 떠오르자마자 츠키시마는 오려던 잠이 확 달아나며 너무 놀라 순간 몸을 벌떡 일으킬 뻔 했다.


미쳤나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습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부슬부슬한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의 장마가 지나 엷어진 빗방울들이 가을을 데려오고 있었다. 찜통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던 기온도 한 번씩 비가 올 때마다 그 열기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살갗에 와 닿는 공기는 서늘했지만 온통 붉어진 츠키시마는 온몸이 더웠다. 발 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둘둘 말아 품에 안고 푹신한 이불 사이로 얼굴을 묻은 츠키시마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려하며 눈을 감았다. 덥다. 분명 더워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럴 것이다. 쓸데 없는 생각이 드는 것도 한여름 밤의 장난일 뿐일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짜증나.


두근대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고 츠키시마는 차게 식어가는 발 끝에 다시금 이불을 발로 휘적거려 펴고는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곤 몸을 웅크렸다. 내쉬는 숨은 여전히 더웠다. 츠키시마에게만 영원할 것 같은 열대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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