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마르타고 고양이 쿠로오랑 삶에 미련없는 츳키 보고 싶다. 고양이일 때 가볍게 차에 치여서 피 흘리면서 비 맞고 있는 거 츳키가 물끄러미 보다가 데려와서 상처 치료해주고 밥 주는 거. 몸 다 회복되고 인간으로 변한 쿠로오가 소원 세가지를 들어주지 인간! 하는데 츳키가 대뜸 그럼 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줘. 하는 거. 당황한 쿠로오가 엩. 하고 멈칫하니까 뭐야. 사기꾼인가 역시. 해서 쿠로오가 그런 건 아니지만 역시 대뜸 죽여달라는 인간도 처음이고 이걸 진짜 해줘야하나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어영부영 같이 살게 되는 거 보고 싶어.
츳키는 딱히 자살을 할 생각은 없는데 살고 싶은 마음은 없고 죽을 수 있으면 죽고 싶다는 상황이라 그냥 길거리도 주변 안 살피고 가다가 차에 치일 뻔 하기도 하고 그냥 좀 너무 매사에 심드렁하고 큰 사고 날 뻔 했어도 그러려니, 안 죽어서 아쉽다는 뉘앙스라 쿠로오가 옆에서 안절부절 못해하면서 그거 뒤치닥거리 해주면서 정분났으면 좋겠다. 밥 챙겨 먹으라고 귀찮게 하고 길 다닐 때 조심하라고 하고 고양이 인채로 학교 맨날 따라다니고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42.
반쯤 허물어져 골조가 드문드문 드러난 폐허.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는 뚫린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줄기가 갈라진 시멘트 사이 피어난 민들레를 비추는 걸 바라보는,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죽어 오지 못하는 쿠로오를 기다리는 유령 츳키.
나는 줄곧 기다려왔어. 계속, 계속 이 자리에서. 당신이 오기만을.
먼저 환생한 쿠로오가 아무 기억 없는 채로 그 땅을 사서 무너진 건물을 보수하고 들어오는 걸 보고 기뻐하지만 자기를 기억하지도, 심지어 보지도 못하는 쿠로오 곁을 맴돌면서 절망하는 거 보고 싶다. 지박령에서 악령으로 변해가는 거. 쿠로오 또한 죽었다가 다시 환생했다는 것을 알리 없은 츳키는 자기를 보지 못하는 쿠로오가 원망스럽겠지. 츳키가 죽었던 날은 츳키의 생일날이었으면 좋겠다. 평일이라 쿠로오는 퇴근길에 케이크 사서 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던 거고 츳키는 집에 있다가 죽었던 거.
43.
- 아, 이 노래.
- 아는 노래야?
- 좋아하는 노래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마한 노래가 익숙했다. 이국의 언어로 불러지는 노랫말을 익숙하게 흥얼거리는 남자에게 그녀가 물었다. 자연스레 대답하던 남자는 이 상황이 어딘지 익숙함을 느꼈다. 데쟈뷰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부유하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장소는 카페가 아닌 서점이었지만. 그녀가 했던 질문을 제가 하고 대답을 하며 웃곤 조그맣게 노랫말을 흥얼거리던 소년의 얼굴. 아아, 쿠로오는 깨달음을 얻은 듯 탄식하고 웃었다.
세월이 지나 무뎌진 감각에 잊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난 아직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난 아무 것도 잊은 것이 없었다. 그가 좋아하던 음악을 좋아하고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좋아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었다. 내가 좋다고 칭할 수 있던 것도 이 음악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 음악을 좋아하던, 노랫말을 작게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소년이었다.
44.
헉... 신선조... 악즉참 쓰는 미부의 늑대 3대 조장 역으로 쿠로오 놓고 떠돌이 검객 현상금 사냥꾼 츠키시마 보고 싶어. 죄인 하나 두고 자기가 잡을 거라고 싸우다 실적 줄어버린 쿠로오가 내가 널 잡아 먹어버릴 거라고 싸우는 배틀호모…
45.
까마귀 수인 츳키가 본능에 따라서 자기도 모르게 반짝반짝한 거 그냥 못 지나치는 거 보고 싶다. 쿠로오랑 같이 길 가다가 쿠로오가 막 얘기하는데 뭔가 허전해서 옆에 보면 저 뒤에서 길거리에서 파는 악세사리들에 눈 못 떼고 쳐다보는 츳키…
자기가 주워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또 주섬주섬 챙기고 있고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핫 하고 주머니에 가득한 잡동사니들 탈탈 털어버리고 쿠로오 웃겨 죽음. 웃지 말라고 츳키가 막 투덜투덜 대면서도 또 길 어딘가에 뭔가 반짝거리면 또 눈을 못 떼고 마냥 쳐다보고 있겠지. 멍하니 반짝거리는 물건에 정신 못 차리는 츳키 길에서 알게 모르게 뒤치닥거리 많이 하는 쿠로오. 아기자기한 반짝거리는 물건들도 많이 사줬으면. 유리 공예로 만들어진 공룡 미니어처라던가...
46.
전대물 보고 싶다. 레드 쿠로오, 옐로우 야치, 블랙 보쿠토, 그린 아카아시, 핑크 츠키시마. 무기와 전투 수트 개발에 스가와 켄마. 왜 히로인이 있는데 자기가 핑크냐고 츳키가 항의하지만 히로인이 핑크여야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기각당함.
쿠로오는 불 속성, 야치는 전기. 보쿠토는 바람 아카아시는 땅, 나무인데 츳키는 사랑 에너지 담당이라 공격할 때 하트 모양 손으로 만들어야하거나 총 쏘는 손모양 만들어서 빔을 쏴야하면 진짜 하기 싫어하겠지. 왜인지 악당한테 납치도 제일 많이 당함.
악당 해치우고 라스트 공격으로는 꼭 핑크의 빔으로 마무리를 지어야해서 고통받는 츳키였으면 좋겠구... 하기 싫다고 전대 탈퇴하고 싶다고 울어도 무기나 수트는 해당 사람의 바이오리듬에 맞춰서 제작한 거고 정의의 용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 차원에서 다 지원되고 관리 되는 거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음. 같은 속성의 다른 대체 용사가 선택되야만 그만둘 수 있는데 현역 용사가 있는데 같은 속성 용사가 선택 되는 일은 전례는 없음.
그러다가 키요코가 새로운 용사로 나타나서 츳키 진심 기뻐했는데 키요코는 블루. 물 속성 용사라서 그거 알게 된 다음 절망하는 츳키.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라오는 탄식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얼굴 감싸고 좌절하는 거 다른 용사들이 토닥토닥해줬으면 좋겠다.
47.
가인 카니발 가사가 너무 좋으니 쿨츳으로 보고 싶다. 영업 사원 쿠로오와 꽃집 주인 츳키. 유독 꽃을 좋아해서 지인들이나 고객한테 꽃 선물 자주 하는 쿠로오가 츳키네 꽃집 자주 가는 거. 그러다 친해져서 꽃을 사지 않더라도 언제나 좋은 꽃 감사하다며 가끔 디저트나 음료 들고 와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어느 순간부터 흔치 않은 꽃집 단골을 기다리는 츳키.
그러던 중 자릿세 올린다거나 관리비 같은 걸로 야쿠자들한테 험한 꼴 당할 뻔한 것도 구해주고. 여기 자주 이러냐면서 쿠로오가 엄청 걱정하고 그러면서 말랐다, 이러니 만만하게 보인다, 그런 사람들한테 말로 이기려고하면 안된다 잔소리하는 다정한 거 쿠로오. 밥 거르면 안 된다고 굳이 굳이 도시락 사들고 와서 같이 밥도 먹고. 그러면서 묘하게 말로 정의하지만 않았지 연애 비슷하게 관계가 흘러가는데 쿠로오가 어느 날 엄청 늦게까지 오지 않는 밤. 평소 가게를 닫을 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문을 닫지 않다가 결국 문 닫고 가려는데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오던 쿠로오가 츳키에게 쓰러지고 결국 그 다음날까지 못 일어나고 숙취로 고생하는 쿠로오 치다꺼리 츳키가 하면서 하루종일 둘이 붙어 있게 되는 거.
그리고 어느 정도 술이 깬 밤 츳키가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냐고 물어보는데 쿠로오는 아무 말 없이 웃고. 마침 축제 기간이라 멀리에서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축제 행렬이 지나가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쿠로오가 우리도 축제하자고. 춤추자며 츳키 일으켜 세워서 손 잡고 어린애들 움직이듯 움직이는데 뜬금없어서 웃는 츳키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키스하고 자리를 옮기겠지.
왜 이러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이렇게 될 거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것은 아니었던 츳키도 분위기에 이끌려서 쿠로오에게 몸을 맡기고. 절박할 정도로 매달리듯 관계를 이어나간 쿠로오가 힘들어서 늘어진 츳키에게 고백하는 거. 이제와서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당신을 좋아했다고.
이미 알고 있었고 서로의 마음이 같으니 별다를 것도 없지 않을까했지만 츳키에게 들리는 쿠로오의 목소리는 가라앉아있겠지. 그런데 이제 우리 시간을 돌려보자고. 내가 그 가게에 손님으로 가지 않았던 날부터 당신은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처음하는 관계여서 너무 힘들고 몸이 아팠지만 일어나려는 츳키를 다시 눕힌 쿠로오가 츳키 눈 가리고 재우듯 도닥이며 계속 속삭임.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나를 잊는 거예요. 말하지 않고 떠나려고 했지만 욕심을 부려서 미안하다고 나즈막히 속삭이는 쿠로오가 이해가 가지 않아 결국 몸을 일으키고 무슨 소리를 하냐고 묻는데 그냥 멀리 떠나게 될 것 같다고만 말하다가 결국 쿠로오가 대답하겠지. 나, 뇌종양이래요. 하고. 제법 깊숙한 곳에 악성으로 들어있어서 발견이 늦었다고. 수술을 해도 성공할지는 모르겠다고.
다 포기한 듯한 쿠로오를 황망하게 보다가 거짓말 하지 말라고 장난치지 말라고 재미 없다고 하는 츳키. 가만히 웃고만 있는 쿠로오를 보다가 결국 눈물 흘리고 마는 츳키에게 계속 당부하는 쿠로오. 나 걱정할 일 만들면 안 된다고 부디 잊고 잘 살라고. 기어코 이렇게 울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괜찮을 거라고. 금방 내가 없는 저녁 시간도 다른 것으로 채워져 흐려질 날이 올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쿠로오가 원망스러워 쿠로오를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만 있는 거에 울며 화내다가 잠들고 일어났을 때 츳키 옆에는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꽃다발만 남아 있어 쿠로오 대신 꽃을 한아름 품에 안고 우는 츳키...
48.
간지러웠다. 무언가 몸을 자꾸 건드리는 감각에 깊이 잠들어 있던 쿠로오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단잠에 방해가 되는 느낌에 조금 짜증스러웠던 것도 잠시 그것이 제 가슴팍에서 꼼지락대는 츠키시마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스르르 마음이 풀렸다.
자다 말고 뭘 하는 건지. 왜 잠들지 못하고 손장난을 치는 것인지 물으려는 찰나 츠키시마의 손가락이 글씨를 쓰고 있음을 알았다. 大好き。 愛してる。히라가나로 제 가슴팍에 써지는 글자들에 쿠로오가 그대로 감격에 겨워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착실하게 마침표까지 찍으며 글씨를 쓰던 츠키시마가 끄응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품 안으로 파고 들어 작은 머리를 부비작거렸다. 늘 이렇게 잠든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려왔던 것일까. 쿠로오는 좋음이 지나쳐 자꾸만 씰룩거리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쿠로오는 아직 잠든 척, 잠꼬대인 척 츠키시마를 끌어안고 샴푸냄새가 좋은 머리칼에 입술을 대었다. 그러자 곧 촉 하고 턱 끝에 닿아오는 감촉이 났다. 이내 새근거리며 잠든 츠키시마가 사랑스러워 쿠로오는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시끄러워 츠키시마가 깨지 않기를 바라며 쿠로오는 조용히 아우성쳤다. 잘 자. 내 사랑. 좋은 꿈 꾸길.
49.
살갗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에 한기가 들어 잠에서 깼다. 얇은 이불을 끌어올리는데 희미하게 담배냄새가 느껴졌다. 흐릿한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언제 들어온 것인지 창가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잠결에 몽롱한 정신에도 반가웠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그 등을 끌어안았다. 막 샤워를 마친 것인지 조금 습한 기운과 샤워코롱의 냄새가 훅 코 끝을 찔렀다. 샤워가운의 부들한 감촉이 좋아 츠키시마는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허리를 감싼 팔에 쿠로오는 아직 장초인 것을 미련없이 비벼 끄고 돌아서 마주 안으려 했지만 그대로 있으라는 듯 꼭 힘을 주는 팔에 저지 당했다. 나 때문에 깼어? 그렇게 묻자 어깨에 기댄 이마가 도리질 치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피워도 되는데. 츠키시마의 말에 쿠로오는 조금 고민하다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달빛에 비친 연기가 푸르렀다. 쿠로오는 비흡연자인 츠키시마의 앞에서 잘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쿠로오에게 은근하게 배어있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샤워코롱 냄새와 담배냄새와 그의 체취가 한데 섞인 냄새를 좋아했다.
졸음에 다시 감긴 눈을 해서 어린 짐승이 하듯 쿠로오의 냄새를 맡았다. 츠키시마의 콧날이 쿠로오의 목덜미에 닿았다. 츠키시마는 제가 뭘 하는 줄도 모르고 촉촉 냄새가 좋은 그 목선을 따라 입술을 내렸다. 왠지 달콤한 것 같아. 혀를 내어 핥짝이자 담배 연기를 뱉는 쿠로오의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급히 숨을 내쉰 쿠로오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려 했지만 보이는 건 흰 뺨이나 코 정도였다.
더듬 더듬 츠키시마의 손이 쿠로오의 샤워 가운 안으로 들어와 배 언저리를 문질렀다. 쿠로오는 결국 반도 못 피운 담배를 비벼 꺼야했다. 힘이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내려가는 츠키시마의 손이 쿠로오의 배꼽을 스쳐 지나 건너 도드라진 장골 위로 향했을 때 쿠로오의 손이 그 위를 덮어 깍지 꼈다. 이 이상은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츠키시마의 손을 떼어내고 돌아선 쿠로오를 보며 조금 멍댕한 표정을 지었던 츠키시마가 아직 잠이 묻은 얼굴로 웃었다.
어떻게 위험해지는데요?
50.
쌍방 삽질하다가 사귀게 되고 밖에서 데이트 하기엔 어색하고 집에서 데이트 하는 쿨츳.
- 영화 끝났네.
- 이제 뭐하지.
- 음료수 마실래?
- 아직 남았어요.
- 과자 먹을래?
- 아까 케이크 먹었는데요...
- 게임...은 별로 안좋아하지?
그리고 잠시 침묵.
- 그럼 키스할까.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살랑이는 커튼에 빛물결을 수놓고 일렁이는 그것들을 따라 함께 울렁거리는 연애 초반의 간지러운 두근거림 보고 싶다. 시선이 진득하게 먼저 얽히고 마주 닿은 손가락이 사이사이 얽히고. 천천히 다가와 포개지는 입술이 폭신한. 가볍게 서로의 숨결이 얽히고 나눈 뒤 떨어진 혀 끝엔 오렌지 주스의 시큼한 맛과 생크림의 미미한 단맛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첫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