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시마와 크게 싸웠다. 너무 감정적이라는 그의 말에 너는 언제나 너무 이성적이라며 화를 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며 츠키시마는 돌아서 집으로 갔고 그 뒤로 일주일 그와의 연락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싸움의 발단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었고 일주일이나 연락을 하지 않을 만큼 쿠로오가 화가 난 것도 아니었지만 마침 겹쳐버린 시험기간과 쌓으면 산이 될 만큼 많은 과제며 쓸데 없는 학과 모임들에 치이다 보니 화해할 타이밍을 놓친 채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것이었다.


볕이 나는 낮에는 포근하고 해가 떨어지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지는 일교차 때문일까, 이것 저것 지나치게 신경 써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일까. 콧물이 조금 나고 머리가 아픈 일이 잦나 싶더니 모처럼의 주말이건만 눈을 뜨자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렸다. 침대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고 덮고 있는 이불이 납덩이인 듯 무겁게 느껴졌다. 답답함이 일어 크게 숨을 들이쉬고자 했지만 꽉 막힌 코는 호흡이 어려웠다. 막힌 코 대신 입으로 내쉬는 숨이 뜨거웠다. 눈을 뜨자 순간 천장이 빙글 도는 듯 어지러웠다. 마른침이 삼켜지는 목도 잔뜩 부은 듯 깔깔했다. 


오늘은 꼭 츠키시마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쿠로오는 조용한 휴대폰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언제 다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까무룩 잠에 들었다 다시 눈이 떠진 쿠로오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곤 무거운 팔을 들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3시 25분. 꿈도 꾸지 않고 제법 오래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화면을 밀어 잠금화면을 풀고 옆으로 넘긴 배경화면엔 몰래 찍어둔 츠키시마의 사진이 있었다. 


수족관에서 고래상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모습. 어둡게 찍힌 사진이지만 푸른 물빛이 아른거리는 츠키시마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눈에 선하다. 쿠로오는 액정 위로 츠키시마의 옆모습이 담긴 사진을 쓰다듬어보았다. 흔들 흔들. 쿠로오의 손 끝이 움직임에 따라 츠키시마의 사진도 함께 흔들렸다. 쿠로오는 잠시 그 사진을 더 바라보다 익숙한 번호를 찾아 눌렀다. 전화 연결 신호음이 두어번쯤 들리고 달칵 통화가 연결된 소리가 들렸다. 




"네. 여보세요."

"츳키."

"네."

"나 아프다..." 




잔뜩 코가 막히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잠시간 대꾸가 없었다. 그렇게 싸우고 난 다음에 처음 하는 전화로 대뜸 아프다고 하는게 어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로오는 알면서도 가슴 언저리가 쿡쿡 쑤셔지는 것 같았다. 어디가 아픈데요. 그렇게 물어오는 것도 형식적인 것 같아 쿠로오는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감기. 아냐. 별로 안 아파. 엄살 부려본 거야. 넌 아직 시험 남았지. ...열심히 해." 




츠키시마는 여전히 한 템포를 침묵한 뒤 대답했다. 




"네. 쉬세요."




전화하지 말 걸. 무미건조하게 끊긴 전화에 쿠로오는 괜히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츠키시마에게는 유독 감정적이 되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지나친 걸까. 너무 기대하는 것이 많은 걸까. 멋대로 기대해 놓고 거기에 부응해주길 바라는 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됐다. 그만 생각하자. 쿠로오는 열이 오르는 눈가며 머리에 어지러움을 느끼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난방을 틀지 않은 방의 공기가 시렸지만 그걸 키려 몸을 일으키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목마른데. 귀찮다. 아프다. 힘들다. 예전에는 츠키시마의 이런 무미건조함을 포함해서 전부 그냥 좋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지치는 걸 보면 권태기인 걸까. 쿠로오의 감은 눈새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나와 엷게 길을 냈다. 그리고 다시 암전. 


그리고 다시 눈이 떠졌다. 이번에 눈이 떠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쿠로오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쿠로오씨. 쿠로오씨 일어나 보세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보자 흐린 시야 사이로 츠키시마가 보였다. 이마 위로 손을 짚고 그 위로 제 이마를 대었다 떨어진 츠키시마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열이 이렇게 나는데 별로 안 아프긴." 




그리곤 쿠로오를 부축해 상체를 일으켜 앉혀준 츠키시마가 부시럭 거리며 봉투에서 어린이용 시럽 감기약을 꺼냈다. 아-. 직접 스푼에 시럽을 따라 대주는 츠키시마를 멀거니 쿠로오가 보고만 있자 츠키시마가 재촉했다. 빨리. 흘러요. 그 말에 정신이 들어 얌전히 시럽을 받아 먹자 한 스푼을 더 먹여준 츠키시마가 입안이 텁텁할 쿠로오에게 미지근한 이온음료를 건넸다. 수분기 없이 바짝 말라있던 식도에 음료가 지나가는 느낌이 선연했다. 평소에는 밍밍하다고 느끼던 이온음료의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웬 시럽약." 




어떻게 온 거냐. 와줘서 고맙다. 그런 반가운 마음과는 다르게 퉁명스럽게 나가는 말에 츠키시마는 식은땀을 흘린 쿠로오의 이마며 목덜미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쿠로오씨 알약 잘 못 삼키잖아요." 




그 대답에 쿠로오가 다시 멍해졌다. 아마도 츠키시마와 사귀고 나서는 처음 이렇게 아팠던 것이었고 알약을 잘 못 먹는다는 것은 아주 잠깐 스치듯이 흘렸던 말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아프면 집이라도 좀 따뜻하게 하고 있지. 난방도 안 틀고 있고. 그러고 보니 아까 전 시리던 공기가 어느새 훈기를 띄고 있었다. 다시 쿠로오를 뉘여준 츠키시마가 약봉지를 들고 일어섰다. 쿠로오는 급히 그 옷깃을 잡았다. 




"갈 거야?"

"좀 더 있다가요. 쿠로오씨 드실 스프 좀 끓여 둘게요. 지금 약 먹었으니까 한 숨 더 주무세요." 




자신을 잡은 손을 부드럽게 떼어 이불 속으로 넣어준 츠키시마를 올려다보는 쿠로오의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너 시험... 괜한 투정을 부리는 쿠로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준 츠키시마가 싱긋 웃었다. 




"그럼 지금 갈까요?" 




쿠로오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좀 만 더 자고 스프 먹어요."




쿠로오는 다시 츠키시마의 옷깃을 잡아 나가려는 것을 막았다. 




"가지 마. 여기 있어."

"아니 그래도 쿠로오씨 먹을 건 만들어 놔야..." 




츠키시마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쿠로오는 아예 그를 향해 안아달라는 듯 팔을 뻗었다. 가지마... 츠키시마는 조금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이불을 들추고 쿠로오의 옆에 누워 목 아래에 팔을 넣어 받쳐주었다. 이전에 쿠로오가 으레 그래주었던 것처럼. 쿠로오는 츠키시마의 품 안으로 웅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어리광은.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츠키시마는 열이 오른 쿠로오의 등을 차분히 다독여주었다. 안아주는 츠키시마의 스웨터에서는 조금 비린 바깥의 매연 냄새와 겨울 바람 냄새. 그리고 한 번 더 숨을 들이 마시면 그 속에서 포근한 츠키시마만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두근 두근 쿠로오의 심장이 조금 속도를 빨리 해 뛰었다. 역시 나는 여전히 네가 좋아.




"세상 바보 같은데 감기나 걸리고. 옛말도 틀린 게 다 있네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픈 사람을 놀리는 게 츳키다워 쿠로오가 웃었다. 취급 너무 하네.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뜨거운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대고 속삭였다. 




"빨리 나아요. 아프니까 속상하네."




시험이며 과제도 다 제쳐두고 제게 달려온 것이며 한 번 흘린 말도 기억해두고 있던 것도, 애정을 기반으로 두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행동임에 쿠로오는 투정부린 자신의 행동이 너무 어리게만 느껴져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이는 다 어디로 먹었는지. 연상의 위엄같은 건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겠네. 근데 이렇게 츳키한테 안겨 있는 거 좋다. 자고 일어나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그리고 또 고백해야지. 사랑한다고. 많이 좋아한다고. 이런 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뒷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는 츠키시마의 손길을 느끼며 쿠로오는 다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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