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랑 사귀고 초반에 속앓이 하는 츠키시마 보고 싶다.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알고 담담히 고백하고 잘 지내세요. 돌아서려는데 사귀면 계속 볼 수 있어? 하고 쿠로오가 대답해서 사귀게 된 쿨츳. 마냥 다정하고 상냥할 줄만 알았던 쿠로오지만 연애를 하는데 미묘하게 차가운 태도의 쿠로오한테 상처 받는 츠키시마.


사귀는 사이니까 시시콜콜한 얘기를 모두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밤에 전화하면 통화가 십분도 잘 이어지지 않고 그냥 형식적인 하루 일과를 말하는 것만 이어져서 점차 별 일 아니라고 생각되면 전화도 잘 안하게 되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을 만한 내용으로. 밥 먹었어요? 같은 의문문이 아니라 바빠도 밥 잘 챙겨 먹어요. 하는 식으로.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쿠로오에게선 그런 말을 잘 듣지 못하기도 해서 귀찮게 느껴질까봐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그래도 만나면 착실히 스킨십은 착착 하는 거. 나란히 걷다가 손끼리 자꾸 부딪치면 그 손을 슬쩍 잡아 준다던가. 데이트 하고 헤어질 때면 키스도 하고. 그러다 몸도 섞고. 하지만 여전히 쿠로오는 츠키시마에 대한 언어적인 애정표현은 하지 않는 거. 연애를 시작하고 조금 말수가 적어진 건 알았지만 밤을 나눌 때에도 말 한 마디 없어서 육체적인 고통을 핑계삼아 우는 츳키. 아프다고 말하면 그만둘 것 같아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츳키가 몸의 고통마저 익숙해지고 두 사람의 정사에서 들리는 건 그저 숨소리와 츠키시마의 신음 뿐이겠지. 어느 날은 츠키시마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제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쿠로오를 끌어 안으면서 말 좀 해요. 하는데 쿠로오가 무슨 말. 하고 반문해서 문득 그 말에 서러움을 느낌.


그러고 보면 좋아한다는 말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지. 계속 아는 사이로 남기 위해 사귄다고 했었지. 역시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리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섹스에도 집중이 안 돼서 그날은 오르가즘도 못 느끼고 쿠로오가 먼저 사정하는 거. 츠키시마는 아직 못 갔으니까 쿠로오가 손으로 만져주려는데 츠키시마가 됐다고 그 손 막고 먼저 씻겠다고 일어나는데 쿠로오는 아, 그래. 하고 말 뿐. 다리 사이에 끈적하게 남아있는 것들을 씻어내다가 벽을 짚고 천천히 주저 앉는 츠키시마.


츳키가 샤워기 아래에서 조금 울고 멍하게 난 지금 뭐하는 거지 하고 나왔는데 쿠로오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만 들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모습에 원래 하루 자고 가려던거 막차 잡아타고 집으로 내려오는 츠키시마. 같이 기차를 기다려주는 쿠로오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고. 거기에 억장이 무너지는 츠키시마지만 그 다음날 저녁에 왠일로 쿠로오가 먼저 전화해서 오랜만에 보는 거였는데 금방 가서 아쉬웠다고. 또 언제 볼 수 있지. 보고 싶네. 하는 말에 다시 구원받은 것 같은 츠키시마고.


그렇게 다시 어영부영 관계를 이어가다가 쿠로오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쿠로오가 아무런 말도 안 해주는 거. 우연찮게 먼저 쿠로오 생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어서 그 날 만나자고 하진 않을까 했는데 쿠로오는 아무 내색이 없어서 다시 혼자 속 끓이는 츳키. 먼저 만나자고 해볼까 했지만 역시 생일에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떠들썩하게 보내는 게 좋겠지. 약속이 있어서 만나자는 말을 안하는 거겠지 생각하고 잠자코 있는 츠키시마. 결국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채 쿠로오의 생일날이 되고 그 날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츳키.


쿠로오에게서는 내내 연락이 없다가 저녁에 뭐하고 있냐는 문자 하나만이 오고 츠키시마는 돌아오는 주말에 쿠로오에게 만나자는 약속을 함. 미야기로 오겠다는 쿠로오를 만류하고 도쿄로 가겠다고 해서 한적한 카페에서 만나고 준비했던 선물을 건네는 츳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어떻게 알았냐고 고맙다고 웃는 쿠로오를 따라 웃은 츠키시마가 말하겠지. 우리 다시 선후배 사이 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평온한 얼굴로 전해지는 이별의 선언에 쿠로오가 선물로 받은 운동화를 이리저리 보다가 표정이 굳고.


뭐? 반문하는 얼굴이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너스레 웃는 츠키시마.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요, 우리. 이제 더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요.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처럼 가볍게도 말하는 츠키시마에게 쿠로오가 다시 묻겠지. 왜?


왜냐니. 그게 당신이 물을 말인가 싶어 웃던 얼굴을 흐린 츠키시마가 시선을 피하고 침묵하는데 쿠로오가 그러지 말라고. 무리하는 거 아니라고 하는데 츠키시마는 그저 고개를 저음. 차라리 혼자서 짝사랑을 하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며. 몇 번 쿠로오가 츠키시마를 붙잡지만 묵묵히 제 뜻을 고집하는 걸 보다 쿠로오도 조금 말이 없다 그러겠지. 너는 할 수 있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 잊을 수 있어? 라고. 그 말에 울컥한 츠키시마가 그럼 어쩌라고요. 계속 이렇게 날 좋아하지도 않는 당신에게 구차하게 매달려서 기생하라고요? 전 더 못해요. 하니 쿠로오가 츠키시마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꼬리를 자르고 대답함.


누가 안 좋아하는데. 화가난 것 같기도 한 쿠로오 반응에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얼떨떨해서 그야 쿠로오씨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 없고... 하면서 말 흐리는데 옆통수 벅벅 긁다가 머리카락 꽉 쥐었다 놓는 쿠로오. 사실 츠키시마를 좋아하지 않아서 매정하게 굴었다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없어서, 츠키시마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서 본인도 당황스러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상태였던 거.


좋아한다고 말 해줘야하는 건 아는데 말하려고만 하면 심장이 요동치고 부끄럽고 츠키시마가 담백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서 못하고 있었던 거지. 자기는 진심을 다해 말했는데 낯부끄럽다는 타박이라도 들으면 너무 상처 받을 것 같아서 시도도 못하고 있었고.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해야되는데 말하려니 얼굴부터 시뻘개져서 다리만 달달 떠는 쿠로오. 아니야. 그런 거 아닌데... 아.... 하다가 츠키시마가 일어나려고 테이블 짚으니까 그 손 덥썩 붙잡고 엎드리는 쿠로오.


ㅈ..ㅎ....아...ㅎ....... 그리고 뭐라고 꿍얼대는데 츠키시마가 인상 쓰고 네? 해서 겨우 겨우 들릴듯 말듯 좋아해. 하고 츳키 손 놔준 다음에 머리 쥐어뜯는 쿠로오. 이런 걸 어떻게 막 말하냐....... 하는 쿠로오 심장소리가 테이블 건너 츠키시마한테까지 다 들리는 것 같고. 그 정도로 부끄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쿠로오한테 다시금 두근거리는 츠키시마. 이럴 거면 지금까지 왜 그런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 날 둘이 차분히 얘기하고 오해 풀어서 다시 알콩달콩 잘 사귀었으면.


그리고 그날부터 전세역전돼서 츠키시마가 쿠로오 놀려먹었으면 좋겠다. 오래 눈 못마주치던게 자기 얼굴 보고 있으면 얼굴 빨개지려는거 숨길려고 그랬던 거 알고 종종 일부러 쿠로오한테 얼굴 들이미는 츠키시마. 사실 쿠로오 집착도 쩔고 질투도 쩌는데 그러면 츠키시마 질려서 헤어지자고 할까봐 쿨한 척 어른인 척 굴려고 했던 건데 쿠로오도 어쩔 수 없는 그 나이 또래의 완벽하지 못한 남자아이였던 거. 봉인해제하고 나서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땡깡부리고 연락 엄청 하고 찡찡거려서 나중에 츠키시마가 이거 완전 사기라고. 사기 당한 것 같다고. 어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냐고 할 지경으로 쿠로오가 바뀌는 거 보고 싶다. 그래도 싫다는 말은 절대 안하는 츠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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