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창밖엔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 하늘 하늘 내리는 눈송이는 제법 송이가 굵고 예뻤다. 다 마신 음료에 일어서려던 두 사람은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손을 들어 두번 째 음료를 주문했다.




“예쁘다.” 

“예쁘네요.”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감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모습대로만 보자면 눈 같은 건 길만 더럽히고 얼면 걷기 힘들다는 둥 싫은 내색을 할 것만 같은 츠키시마지만 사실 차가운 겉모습 속 숨겨진 내면은 제법 순수한 소년과 같았다. 눈이 쌓이면 작게라도 눈사람을 만들러 가자고 할까. 그러면 어쩐지 츠키시마는 눈사람보다는 눈토끼를 만들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쿠로오는 웃었다.




“이렇게 눈이 예쁘게 내리는 걸 보고 있으면 꼭 꽃잎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것 같아요.”




쿠로오는 살풋 미소지었다. 평소라면 속에 숨긴 동심이나 감상을 내비치지 않지만 이렇듯 예쁜 풍경이 앞에 있다면 코코아 속의 마시멜로우처럼 말랑해져 말이 길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지만 그래도 내심 부끄러운 구석이 있는 듯 목소리는 조금 작고 말은 빨리 끝났다. 시선은 여전히 창 밖으로 가 있는 츠키시마를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바라보며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닮았네. 눈이랑 꽃잎. 눈은 겨울에  내리는 꽃이구나.” 


“꽃 보고 싶다. 눈이 내리면 꼭 벚꽃도 보고 싶더라.”




쿠로오는 대답 대신 츠키시마의 손을 잡았다. 내리는 눈송이가 조금 작아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눈은 금새 그쳤다. 눈사람을 만들지 못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쿠로오는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의 여행을 제안했다. 츠키시마는 나중에. 라고 대답했다. 빨간색 두툼한 외투를 선물할까. 그걸 입고 후드를 씌워준 뒤 눈 구경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 복실복실한 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눈을 만지작거릴 츠키시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쿠로오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중에. 꼭 가자.


계절은 돌고 돌았다. 츠키시마가 소원하던 흩날리는 꽃잎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꽃놀이도 즐겼다. 꽃이 지고 녹음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 낙엽이 뒹구는 가을이 왔고 내도록 두 사람은 함께였다. 그리고 겨울. 짧아진 가을은 이르게 물러났다. 빠른 추위만큼 눈도 빨리 내렸다. 올 해는 작년보다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빠지지 않고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그래서일까. 첫 눈 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왔다.


첫 눈인데, 쌓일 것 같네. 평소보다 빨리 추워진 날씨에 츠키시마는 투덜거렸지만 어딘지 마음 한 구석만은 들떠왔다. 첫 눈이 오는 날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쿠로오인 탓인 것을 알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공원. 아직 쿠로오는 도착 하지 않은 듯 했다.


늦나. 그런 연락은 없었는데. 걸어오는 사이 받지 못한 연락이 있는지 확인해보려 꺼내든 휴대폰 위로 꽃잎 하나가 떨어졌다. 어? 놀라 쳐다본 하늘에 팔랑 팔랑 눈송이 사이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벚꽃잎이었다. 츠키시마는 휴대폰 위로 떨어진 꽃잎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생화가 아니라 말린 벚꽃잎이었다. 한 두 개로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 만큼이나 많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 츠키시마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엔 말린 벚꽃잎을 츠키시마 위로 뿌리고 있는 쿠로오가 있었다. 




“안녕.” 

“뭐 하는 거예요.” 

“눈이 오는 날엔 흩날리는 꽃잎이 보고 싶다며.”

“아.” 




츠키시마가 탄식했다. 눈송이 사이로 흩날리는 꽃잎이라니. 옅은 분홍색의 팔랑이는 꽃잎이 아름다웠다. 그 사이로 웃고 있는 쿠로오가 사랑스러운 건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신은, 정말, 츠키시마는 당했다는 표정으로 웃어버렸다. 살면서 받아본 중 가장 예쁜 선물이 아닐까. 평생 이 풍경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꽃잎이 날리던 눈이 흐부끼던, 그 사이로 웃는 쿠로오의 얼굴이 생각나겠지. 츠키시마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쿠로오에게 팔을 벌렸다. 




“위험해. 내려와요.”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무에 매달려서 내려오는 폼은 빈말로도 멋지다곤 할 수 없지만 답싹 안겨오는 그의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츠키시마는 꽃잎이 내려앉은 얼굴로 환히 웃었다. 




“고마워요.”




쿠로오는 츠키시마의 앞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며 그 이마에 입맞추었다. 츠키시마는 주변을 둘러보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고개를 기울여 조금 터서 가슬거리는 쿠로오의 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 쿠로오의 옷자락에도 붙어 있던 꽃잎이 바람에 날려 스치고 지나가며 뺨을 간질였다. 츠키시마의 후드를 씌워주며 당긴 쿠로오가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벅차도록 따뜻한 겨울의 시작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