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무니님









부와아아앙- 끼이익.


일부러 개조한 것이 분명한, 싸구려 엔진의 거친 소리가 시끄러웠다. 멀리 갔음에도 가른 공기를 떠도는 엔진소리에 겨우 겨우 잠에 빠지려던 정신이 끌어올려져 츠키시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뾰족뾰족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돋아난 공이 머릿속을 튀어다니는 기분이었다. 피곤해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짜증스레 꺠워진 정신만이 또렷했다. 몇 번 몸을 뒤척이던 츠키시마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자려고 누운 것이 12시였건만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내일도 오전 일찍부터 강의가 있는데. 절로 한숨이 뱉어졌다. 


세상은 불필요한 빛과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과하게 밤을 밝히는 간판의 조명들과 밤에도 잠들지 않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의 소리. 간간히 들려오는 떠들썩한 텔레비전의 바보같은 버라이어티쇼의 웃음소리들. 츠키시마는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세며 구조, 학교와의 거리 등. 다른 조건들은 제법 좋은 집이었지만 번화가에 인근한 골목에 위치한 탓일까. 도시의 소음이 가까운 집이었다. 빛이야 암막커튼으로 가릴 수 있다 쳐도, 유난히 거슬리는 소리들이 시끄러운 날이면 츠키시마는 제 고향이 그리워졌다. 가로등 불 하나 고즈넉하고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리던 그 아늑하던 밤이. 


다시 잠을 청해보려 눈을 감았지만 이내 집 안에 낮게 울리는 냉장고의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마저 거슬렸다. 잔뜩 신경이 곤두서 어쩔 수도 없을만큼 짜증이 났다. 츠키시마는 이불 속에서 의미 없이 발만 휘적거리다 한 사람만큼의 공간이 비어 있는 자리로 몸을 옮겼다. 그 자리에 위치한 베개를 베고 조금 서늘한 천 위로 고개를 부볐다. 가삭거리는 베개커버가 움직이며 제 주인의 향이 풍겼다. 같은 샴푸, 같은 바디워시를 쓰는데도 꼭 베개에서는 조금 다른 그만의 냄새가 났다. 




“쿠로오씨….”




베개를 안고 그리운 그의 냄새를 맡고 있자니 조금 기분이 풀렸지만 혼자 누운 침대가 유난히 넓게만 느껴졌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팔이며 다리가 닿고, 고개를 돌리면 코 앞에 그의 얼굴이 보였는데. 엎드려 자다가도 그의 팔꿈치에 츠키시마의 얼굴 어딘가가 닿으면 돌아 누워 츠키시마의 목 아래로 팔을 넣고 품 안으로 끌어당겨주던 온기가 그리웠다. 그의 다리 한 쪽을 넣어 끼우고 자던 다리 사이도 조금 허전한 기분이라 츠키시마는 이불을 다리로 끌어 당겨 넣었다. 


츠키시마는 지금 얼굴을 부비는 것이 쿠로오인 양 베개에 쪽 입을 맞추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지만 자각하고 나자 츠키시마는 낯이 다 뜨거워졌다. 내도록 같이 살다 한 번 출장을 간 것 뿐인데 이런 꼴이라니. 누가 보면 쿠로오가 아주 없는 사람인 줄 알겠다. 그리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쿠로오의 출장을 떠난 첫날 밤이었다. 아침에도 잘 다녀오라며 배웅을 했고 자기 전에도 통화를 한 사람이었는데. 오랜 친구인 야마구치 조차도 이런 제 모습을 본다면 아마 한참이나 입을 벌리고 기겁할 일이겠지. 츠키시마는 자기 자신이 우스워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쿠로오씨 뭐하려나. 보고 싶다. 이제 일할 시간이려나. 연인을 보고 싶어하는 동안 어느덧 십오분 가량이 흘렀다. 찬장 어딘가에 두었던 수면유도제를 떠올린 츠키시마는 조금 고민하다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최근 통화목록 가장 상단에 위치한 번호를 터치했다. 



“케이?”



통화연결음이 한 번 채 가기도 전에 들리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눈을 감았다. 언제 들어도 좋은 그의 목소리로 불리는 제 이름이었다. 




“엄청 빨리 받네요. 일 하는 중 아니에요?”

“잠깐 데이터 백업 로딩 기다리는 중. 케이 아까 잔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안자고?”

“응. 그랬는데 오늘따라 밖이 시끄러워서요.”




이어폰에서 흘러들어오는 나즈막한 쿠로오의 목소리에 삐죽삐죽 곤두서있던 신경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일하는 데 방해 안 되면 통화 조금 괜찮아요?”

“당연하지.”

“쿠로오씨는 안 피곤해요?”

“낮에 기차에서 계속 잤더니 괜찮아. 어차피 내일 낮에도 계속 잘 수 있고.”

“출장 끝나고 다시 낮에 일어나려면 힘들겠네.”

“케이야 말로 내일 오전 수업이잖아. 지금까지 깨있어도 내일 괜찮을까?”

“잠들려는데 오토바이인지 차가 자꾸 시끄럽게 지나가서요.”




일정 데시벨 이상으로 엔진 소리가 크게 나면 벌금을 물던지 소리 나는 부품을 다 떼버려야 된다는 츠키시마의 볼멘소리에 쿠로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케이 잘 자라고 자장가라도 불러줘야하나.”

“사양합니다.”

“너무해-”




뻔히 싫다는 대답을 예상하고 던진 말이었을테니 너무한다는 반응에도 정말 서운한 기색은 없었다. 그저 언제나와 같은 가벼운 장난이 시시하게 끝나고 잠시 둘은 말이 없었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짤그락거리는 마우스의 클릭 소리 사이로 사그락거리는 알 수 없는 소리가 섞여 츠키시마는 귀를 기울였다.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짜증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채였다.




“뭐해요?”

“응? 미안 미안. 백업 하나 끝나서 다음 작업 하느라.”

“아니, 지금 계속 무슨 사각거리는 소리 같은 거 나는데.”

“아. 이거 손난로. 봄이래도 아직 새벽에는 조금 쌀쌀하네. 조금 손이 시린 것 같아서 만지작거리고 있었어.”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나?”

“스피커폰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가. 많이 시끄러웠어?”

“아뇨. 그 소리 듣기 좋았어요.”




사그락 사그락. 사부작 사부작. 조금 더 가까이 이어폰에서 의미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쿠로오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안정을 찾은 신경 위로 노곤함이 덧씌워졌다. 




“아, 나 잠 안 오면 하는 거 있어.”

“뭔데요?”

“내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생각.”

“흐응.”

“아래는 아득하게 깊은 조용한 물만 가득한 거야. 천천히 발 끝에서부터 힘을 빼면 조금씩 물 아래로 가라 앉는 거지.”




츠키시마는 대답하지 않고 바로 누워 쿠로오의 말을 따라 이미지를 떠올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한 밤바다에 떠올라 있는 것을. 천천히 발 끝에서부터 힘을 빼고 가라앉는 상상을.




“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빠져드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간간이 이어지는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낮고 천천히 이어지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서서히 잠겨갔다. 별빛과 달빛이 수면 위로 물 그림자로 일렁이고 차츰 그 희미한 빛들도 사라지며 온전히 어둠으로 물들어 간다. 어쩌면 깊이도 알 수 없는 물 속으로 잠긴다는 상상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불러올 수도 있는 상상이지만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은 딱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츠키시마에게 있어 어둠은 사랑하는 연인 쿠로오 그 자체였다. 몸에 힘이 빠지며 눈 앞이 어둠으로 물들자 쿠로오의 품 속으로 안겨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츠키시마는 잠에 빠져들면서도 오늘 다른 것이 시끄러워 잠이 안 왔다기보다는 그저 쿠로오가 보고 싶어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조그만 소리조차 거슬려하는 신경에 쿠로오가 만들어 주는 소음은 이다지도 평온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였으니.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왔던 걸까. 나중에 쿠로오가 돌아오면 흘리듯 말해볼까. 못견디게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좋아할 쿠로오의 얼굴이 절로 떠올라 츠키시마는 웃었다.


적당히 방해가 될 제 목소리는 죽이고 휴대폰 근처에서 손난로를 만지작거리며 일정한 소음을 만들어 주었다. 잠에 들며 몸을 뒤척이는 것인지 이불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근 새근 츠키시마의 숨소리가 차분해지는 것을 듣지 않아도 느끼며 쿠로오는 미소 지었다. 잠이 오지 않아 제게로 전화를 한 츠키시마가 귀여웠다. 


둘이 함께 살기로 생각하고 가구를 고를 때에 침대는 일부러 가장 큰 사이즈를 골랐었다. 장신의 남자 둘이 누워도 넉넉하던 넓은 침대 위에서 혼자 잠들 츠키시마를 생각하니 쿠로오는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사막에서도 혼자 살 수 있을 것처럼 야무지고 세상 혼자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무미건조한 얼굴의 연인이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처럼 외로운 것에 약한 츠키시마임을 알고 있었다. 




“아, 보고 싶다. 케이.”

“…빨리 와요.”

“?!”

“보고 싶어….”

“케이 깼어?”




수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지 조금 시간이 흘러 츠키시마가 잠든 줄 알고 슬슬 끊으려다 무심코 흘린 속내에 한 박자 느리게 돌아온 대꾸에 쿠로오가 조금 놀랐다. 다시 잠에서 깬 줄 알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잠꼬대인가. 멍하게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쿠로오가 얼굴을 감싸쥐고 다리를 덜덜 떨었다. 아, 나 왜 출장 중이지. 츠키시마를 재우며 따라 조금 몰려왔던 졸음이 단번에 가시며 어쩔 줄 모를 만큼 몽실거리는 츠키시마에 대한 애정이 차 올랐다. 빨리 돌아가서 츠키시마를 품에 안고 함께 잠들고 싶다. 쿠로오는 마른 세수를 하곤 잔뜩 풀어진 얼굴로 휴대폰을 들어 쪽 입맞추었다. 잘 자. 내 사랑. 










*


“잠 안 온다고 전화해준 거 너무 기뻤어.”

“별 게 다.”

“나중에 또 잠 안오면 약 같은 거 먹지 말고 또 나한테 전화 해.”

“일 하는데 방해잖아요.”

“그럼 츳키 못 잘 때마다 들으라고 동영상 같은 거 찍어서 보내줄까. 그 손난로 같은 거 만지작 거리는 거.”

“음. 그건 좀 좋을지도.”

“인터넷에도 올릴까? 케이를 위한 백색소음 시리즈-”

“싫어요.”

“오야?”

“다른 사람들이랑 공유하기 싫어요. 내 건데.”



품에 파고들며 편한 자세를 찾으려는지 꼼지락거리는 츠키시마의 어깨를 잡아 떨어뜨린 쿠로오가 빙글 몸을 돌려 일으키며 그의 위로 올라탔다. 낯선 잠자리며 츠키시마가 없는 옆자리가 허전해 잠을 설친 일주일이 너무 피곤해 바로 츠키시마를 안고 잠들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츠키시마를 재우고 싶지 않아진 쿠로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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