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거하게 마시고 엄청난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거의 눈 감고 비틀비틀 좀비처럼 냉장고 가서 병째로 물 마시고 정신 차린 쿠로오 눈에 보인 건 자기 침대에 누워있는 또 다른 사람 하나. 뒷모습인데 언뜻 봐도 등이 남자고 키가 커. 방금 전에 물 마셨는데 또 목이 타고 머리는 아프고 그제야 들어오는 방 꼬라지에 눈 앞이 캄캄해져서 그만 생수병 놓치는 쿠로오.

 

침대 주변에는 옷 그냥 널려있지, 자기도 옷 다 벗고 있지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도 허리랑 다리는 이불로 가렸지만 뭔가 입고 있을 것 같진 않겠지. 그리고 등이며 목이며 시뻘겋게 올라와있는 잇자국이며 키스마크에 딱 견적이 나오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나고 물은 쏟아지고 있고 발 차가워서 냉장고 아래로 물 다 들어가기 전에 급하게 행주 잡고 호들갑 떨면서 물 닦는데 부산스러운 분위기에 앓는 소리 내면서 일어나는 남자는 과 후배 츠키시마여서 닦던 바닥에 털썩 앉는 쿠로오.

 

입학 수석으로 들어왔다던 앤데 말 수도 없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거 말고는 말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고 행사에는 당연히 참석 안했는데 어제 무슨 일인지 개강파티에 와서 다들 신기해하고 말 걸고 술 주는 분위기였지. 생각보다 애가 말하는 게 재치있고 시니컬하게 장난치는데 너무 웃겨서 마음에 들어서 같이 몇 잔 기울인 거 생각나고 우리 집 가서 자자고 억지로 끌고 온 게 어렴풋이 떠올라서 깨질 것 같은 머리며 미식거리는 속에 그냥 바닥에 고인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은 쿠로오.

 

아니 근데 아직 모르는 거잖아, 라고 애써 현실 부정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남아있었지만 츠키시마가 부스스 일어나서 쿠로오 한심한 꼴로 앉아 닜는 거 보고 미간 찌푸리더니 손 내밀면서 이것 좀 풀어주실래요? 하는데 손목에 자기 남방이 칭칭 묶여있어서 혀 한 번 세게 깨물어보고 아픈 거에 꿈 아닌 거 깨닫고 넙죽 엎드려서 사과하는 쿠로오. 미미미ㅣㅣ미안해!!! 내가 어제 무슨 짓을...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바닥에 아직 덜 닦인 물은 차갑고 맨살에 닿아서 찝찝한데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계속 바닥에 고개 박고 있는데 한숨 쉰 츠키시마가 기억은 나요? 하고 조금 쉰 목소리로 물어보지만 사실 기억이 잘 안나 미안해....... 하고 솔직하게 말함.

 

솔직하게는 기억을 쥐어 짜내니까 아래에서 애가 아프다고 울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매달리던 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아서 다시 바닥에 머리 박고 죄송합니다!! 욕해도 돼, 때려도 돼!! 하고 어떤 욕이라도 달게 먹을 준비를 하는 위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겠지. 됐으니까 이거나 풀어 주세요. 고개 살짝 들어서 눈치보다 쭈뼛쭈뼛 다가가서 엄청 세게도 묶어놓은 남방 푸느라 낑낑대면서 얼핏 봤는데 츳키 몸 앞에는 더 가관도 아니겠지. 팔뚝 안 쪽이며 옆구리며 가슴이며 무슨 피부병 걸린 것도 아니고 자국도 골고루 내놨어. 손목은 오래 묶여있어서 시뻘겋게 옷 자국이 그대로 나 있고.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괜찮냐고도 못 물어보겠는데 손목에 난 자국을 매만지던 츠키시마가 죄송한데 조금만 더 자다가 나가도 되겠냐고 하는 거에 냉큼 어! 어 그럼!! 푹 쉬어!! 하고 아직 닫지도 못한 냉장고가 삑삑 대는 거 닫고 바닥에 흐른 물 닦으면서 머리 쥐어 뜯는 쿠로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데 또 생각나는 건 아프다고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자기를 밀치는 츠키시마의 반응이 성가셔서 손목 잡아다가 자기가 묶은 거 생각나서 또 바닥에 머리 박고. 나 이거 완전 범죄자 잖아. 츠키시마가 저런 반응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쟤도 기억 안나나?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냥 죽고만 싶고 씻는 소리도 시끄러울까봐 물만 끼얹고 닦는 수준으로 대충 씻고 나와서 숙취로 찡찡 울리는 머리 부여잡고 주섬주섬 널려있는 옷가지들 주워다 개켜두고 살그머니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새근새근 잠든 츠키시마 등 바라보다 죽고 싶다. 나 이제 어떡하냐 하는 생각하다가 다시 잠들어 버림.

 

깜빡 졸았다가 또 머리 아프고 목말라서 깨는데 몸에 이불이 둘러져있음. 잠깐 상황 파악 안됐다가 들리는 줄도 몰랐던 물소리가 그치고 나오는 츳키 목덜미 멍청하다 쳐다보다가 옷 위로도 점점이 새겨져 있는 츠키시마보고 다시 넙죽 엎드림. 역시 미안해!!! 그런 쿠로오 보고는 또 한숨 쉰 츠키시마가 물 좀 마셔도 될까요? 하는 거에 후다닥 일어나서 손수 물 컵에다 따라서 드리는데 손에 힘이 없어서 달달 떨리는지 양손으로 컵 잡고 꼴깍꼴깍 천천히 마신 츳키가 쿠로오씨는, 괜찮아요? 하고 물어보는데 뭐지, 나도 넣어졌었나. 그런 기억은 없는데. 하고 다시 혼돈의 카오스가 된 머리로 기억을 쥐어 짜내는데 남자랑 해서 역겹지 않아요...? 하는 떨리는 목소리에 아, 그러게. 남자랑 했구나. 싶고 원래라면 상상도 못할 짓이었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안들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도 내가 너한테 심하게 한 것 같으니(차마 강간이라는 단어는 못 꺼내고)미안하다, 책임지겠다 하는데 피식 웃는 츳키 얼굴에 아차 싶은 쿠로오.

 

돈 엄청 내놓으라고 할까봐. 그런데 츳키는 그냥 컵만 만지작거리면서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그럼 됐어요. 술 마시고 어쩌다 한 불장난 같은 정도로 생각한다고 쿠로오씨한테 책임지라고 안 할 거라는 말에 어떻게 그러냐고 울상짓는 거에 단호한 츳키. 여태 술마시고 잔 여자들이랑 다 사귀셨냐고. 그럼 저랑도 사귀면서 책임져 주시게요? 하는데 돈 얘기는 안 나와서 다행이긴한데 이것도 선뜻 대답하기에 곤란한 얘기는 매한가지여서 동공지진옴. 그거 보면서 자기는 원래 게이라 남자랑 한 거 상관 없다고 그러니까 신경 더 안 써도 된다고. 남자랑 하게 돼서 유감인데 나도 그부분에 대해서 더 신경 안 쓸 거니까 그냥 서로 잊자고 하고 나가버리는 츳키.

 

근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 제대로 기억은 안나도 자기가 울린 게 맞고 아프다는 애를 묶고(...) 하기까지 했는데. 게이는 원래 원나잇에 쿨한가? 싶지만 자기는 원나잇도 안하고 애가 주말 지나고도 학교에서 비실비실대는 거 보이자마자 끌고 가서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 사먹이는 쿠로오. 다시 얼굴 마주해도 쌩깔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오니까 당황스러워서 얼굴 찌푸리는데 쿠로오는 신경도 안 쓰고 미간 눌러주면서 밥은 먹었냐고 어린애가 그렇게 벌써부터 주름생기면 안된다고 오지랖부림.

 

그렇게 쿠로오는 애가 신경쓰이고 눈에 밟혀서 따라다니면서 챙겨주려고 하고 도망다니면서 짜증내는 츳키. 그러다 결국 저 게이라니까요?! 하고 츠키시마가 화내는데 그게 뭔 상관이냐는듯 눈 동그랗게 뜨는 쿠로오. 그 표정에 당황한 츳키가 자기가 혹시라도 오해하면 어떻게 하냐고 우물쭈물하면서 말하는데 오야? 안경군도 취향이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취향이야? 하는데 미쳤어요?! 하고 즉각 나오는 대답, 쿠로오 자기가 츳키 취향 아닌 걸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질색이나 하냐...하며 타격입고 그냥 차근차근 설명해줌.

 

어쩌다보니 그런 일이 있긴 해서 미안해서 그런 것도 있긴 한데 네가 그런 성향인 건 친구가 되기에는 상관 없는 거 아니냐고, 인간적으로 네가 좋다고. 그건 안되냐고. 혹시 그날 일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서 내가 꼴도 보기 싫은 거면 안 따라다니겠다고. 그거에 누그러져서 같이 다니는데 쿠로오가 점점 츳키한테 치대서 자꾸 츳키 또 헷갈려하다가 거리 두려는데 쿠로오랑 술마시다가 쿠로오가 진득하게 츳키 보면서 나, 너랑 다시 하고 싶다. 해줬으면.

 

그렇게 또 어영부영 몸 섞고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채로 연애하는 거 비슷하게 쿠로오가 치대고 츳키도 슬금슬금 마음 열어가는데 츳키한테 쓰레기도 꼬이고 서브공도 꼬여줬으면 좋겠어😌 고학번 선배인데 자꾸 츳키 기생오래비마냥 야들야들하게 생겼다느니 성희롱 하고 추근덕대는 애 생겼는데 츳키는 신경도 안 써서 쿠로오가 더 빡쳐하다가 둘이 싸우고 그러는 와중에 대학원 기간제 교수인 사쿠사 눈에 츳키가 들어서 자주 부르는 거.

 

슬슬 말도 안하고 쿠로오랑 애매한 관계인 거 짜증나는데 사쿠사 연구 자료 정리 도와주는 교수실에서 사쿠사가 물음. 남자친구 있나? 그 말에 콱 사레들러서 츳키가 켈록대는데 고개 갸웃한 사쿠사가 그 한학번 위에 닭벼슬 머리? 하고 또 물어보는 거에 츳키가 얼굴 새빨개져서 사귀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남자를 좋아하는 건 맞나보네 하고 마스크 내리고 흐흥 웃는 교수. 그 닭벼슬 머리는 원래 여자친구가 있던 걸로 아는데. 하는 말에 츳키가 안 그래도 복잡한데 교수가 그걸 헤집어 놓으니까 풀이 죽어서 탁탁 종이만 세게 치면서 정리하는데 머리 쓰다듬어주던 교수가 넌지시 속삭임. 어디다 말도 못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 털어놔도 돼.

 

그 말에 미주알 고주알 쿠로오랑 어떻게 됐었는지 얘기하는데 사실 먼저 반한 건 츳키였고 처음 사고친 날도 잠든 쿠로오한테 먼저 뽀뽀하다가 쿠로오가 감질나니까 일어나서 키스하다가 아래 깔린 거였지. 여자랑 착각해서 움직이는 거 쿠로오 남방으로 가리고 츳키도 술김에 그래 해버리자! 했는데 쿠로오만 핥아서 세워놨는데 자기는 풀지도 않고 하려니 너무 아프고 대충 손가락 넣어봐도 아파서 쿠로오 위에서 내려와서 도망가려는데 이미 세워진 쿠로오가 잡아다가 한 거... 아프다고 기다려 보라고 츳키가 버둥대니까 눈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쉬, 착하지. 천천히 할게. 달래면서 구멍 풀어주다가 하는데 그래도 너무 아파서 울면서 도망치려니까 손을 묶을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는 좀 좋았고... 그러고 그냥 끝날 줄 알았는데 쿠로오가 진짜 너무 괜찮은 남자였고.. 근데 사귀자는 말은 못하겠고 그쪽에서 나오지도 않고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다 그동안 했던 맘고생 때문에 우는 츳키 사쿠사가 당겨 안아서 다리 위에 앉혀 놓고 토닥토닥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그 선배새기가 츳키 막 주물거릴려던거 대차게 까이고 쪽팔려서 되레 저새끼가 게이다 문란한 놈이다 성적 잘 받으려고 교수랑 잔다 뭐 이런 소문 퍼뜨리는데 서로 감정 안 좋던 쿠로오가 처음에는 아니라고 길길이 뛰다가 사쿠사 차 타고 츳키가 둘이 어딜 가더라는 목격담 듣고 벙찌고 요즘 그러고보니 진짜 그 교수랑 너무 붙어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츳키 찾아가서 너 그 교수랑 진짜 잤냐? 하고 비꼬듯이 물어보는데 숨이 턱 막히는 츳키. 츳키가 기가 막혀서 대답을 못하는데 화난 쿠로오는 그 침묵이 긍정의 대답인 것 같고. 자기랑 했던 건 뭐였냐, 소문이 진짜 였냐 추궁하는데 츳키도 화가 나겠지. 자꾸 대답해보라는 쿠로오 따짐에 츳키가 제 대답이 필요한가요? 이미 제가 뭐라고 말해도 선배는 들을 것 같지도 않은데. 하고 쏘아 붙이고. 마음대로 생각하시라고. 제가 굳이 대답을 해야될 것 같진 않다고 하고 돌아서서 펑펑 울고 오해가 깊어지고...

 

갈 데가 없어서 연구실에서 혼자 우는 츳키를 교수가 낚아가고... 나 이런 거 좋아....😂 나중에 사쿠사한테 가서 쿠로오가 츠키시마 가지고 놀지 말라고 씨근덕대는데 사쿠사는 비웃으면서 가지고 놀던건 자네 아니였냐고. 어줍잖은 마음으로 애 흔들어 놓고 정작 중요한 건 확신도 못주는 놈보다야 내가 나은 것 같다고 하고. 학교에서 떠도는 가십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걸 가지고 애를 그렇게 몰아붙이냐, 넌 자격이 없다. 너 살던대로 살고 그냥 꺼져라. 소문이야 쓰레기 하나 나가고 방학 한 번 지나고 나면 사라질 거라고. 넌 그 소문에 더 불을 붙였을 테지만 난 잠재울 수 있다하고.

 

쿠로오가 자기한테 교수랑 잤냐고, 그렇게 가벼운 새끼였냐고 말했던 날 연구실에서 울다가 쿠로오랑 싸우고 나온 사쿠사가 츳키 찾아다가 그냥 좀 다독거려줄까 했다가 애가 울면서 안겨드는 거에 키스해(짝) 원래 그렇게 애매한 애들이 제일 나쁘다고 꼬드기면서 편한 연애하자고. 나는 널 편하게 해줄 수 있다하면서 눈꼬리에 입맞추는데 그 접촉에 잠깐 주저하던 츳키가 거부하지 않고 그냥 눈 감고 받아들여버리고. 편해지고 싶어요. 힘들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바로 입술 겹쳐버리는 사쿠츳키.

 

츳키는 쿠로오 잊으려고 사쿠사랑 만나고 쿠로오는 짜증나는데 어떻게 해야될 줄은 모르겠고 그러다가 자기 무시하는 츳키한테 너 진짜 가볍다. 했다가 츳키가 엉덩이 가벼운 애한테 놀아났다 셈치고 그냥 그렇게 계속 더럽다고 욕하시라고. 너 같은 걸 좋아한 자기가 병신이었다고. 그냥 다신 보지 말자고 하는데 쿠로오는 처음 보는 츳키 우는 얼굴에 넋나가서 좋아했다는 말만 계속 곱씹고. 그러다 사실 츳키가 그런 거 뜬 소문이었고 선배새기가 나쁜놈이었고 사쿠사랑 츳키랑 그런 사이 된 것도 자기 때문이었고 나중에 알고 다시 사쿠사한테 츳키 뺏어와서 행쇼해 쿠로츳키.

 

뺏어온다기 보다는 자기랑 하고 쿠로오 찾으면서 울면서 잠든 츠키시마 보고 속쓰린 사쿠사가 걍 쿠로오한테 야 빨리 뺏어가 이 멍청한 놈아 하고 애 보내주겠지.  나중에 쿠로오한테 가기 직전에 츳키가 사쿠사가 맘에 걸려서 갈팡질팡할 때 교수님 멋진 남자였음 좋겠어. 나는 똑똑한 애가 좋은데 넌 이제 보니 완전 헛똑똑이라 별로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 닭대가리랑 연애하라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또 그 닭대가리가 속썩이면 와. 바람 피워 줄게. 해서 헛똑똑이라 별로라면서요? 했더니 아주 멍청한 건 아니라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농담해서 츳키 또 미안해서 울고. 그거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이마에 뽀뽀해주면서 보내주는 겨수님.

 




사회성 붙임성 별로 좋지 못한 카게야마가 대학 들어가서 오지라퍼 선배들한테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왜 그러고 사냐 이렇게 해봐라 이래라 저래라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들 때문에 너무 귀찮고 그래 이 정도는 뭐 해보자 해서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챙겨주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게따. 그거 때문에 츳키랑 헤어져버려.


좌식 식당에서 방석을 깔아준다던지, 손수건이 없으면 빌려준다던지, 정말 아주 작은 부분부터 다른 사람들을 챙기면서 관계를 신경쓰는데 진짜 사람들이 너무 별 거 아닌데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거에 카게야마도 그런 반응들이 나쁘지 않은 거. 중학교 땐 선배며 동기며 자기를 안 좋게 생각했고 그거 때문에 꽤 깊은 상처도 있었고 카라스노에서 그나마 좋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타인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이제 막 배웠고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걸 체감했을 테니 너 무서운 표정하고 있는데 사실 나쁜 애 아니구나! 하는반응이나 다가오는 사람들이 내심 기쁘지 않았을까. 자기가 귀찮은 거 조금만 감수하면 다들 이렇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생기니까. 배구 이외의 주제로 시덥잖은 장난을 치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선배들도 그래, 눈치 빠르게 구니까 얼마나 좋아. 하면서 칭찬도 해주고. 칭찬 받으니까 아 이러면 되는구나 하는데 인간관계 서툴러서 정도를 잘 모르고 그냥 일단 친절한 행동(만) 하는 카게야마. 행동은 친절한데 표정은 늘 그렇듯 무심하고 오다 주웠다. 같이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라서 여자애들 한테 주가가 엄청 올라가 버려야해. 잘생겼지 키크지 운동 잘하지 맨날 뚱한 표정이라 말 붙이기 어려웠는데 사실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야! 귀여워! 근데 또 말 없이 지켜보다 갑자기 자기를 챙겨주고 휙 떠나. 몇몇 여자애들한테는 오해도 사게하고.


츳키는 어느 순간부터 애가 조금씩 답지 않게 이런 것도 챙길 줄 알아? 하는게 생겨서 뭐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카게야마의 그런 배려나 챙김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간질간질 하니 좋았는데 사실 알고보니 그게 만인에게 하고 있던 거였어. 환장파티. 뭔가 옷에 묻었을 때 묻었다. 하고 알려만 주고 마는 게 아니라 직접 닦아주고 심지어 손에 케이크 크림이 묻었을 때 츳키 손 잡고 물티슈로 닦아줘서 엄청 감동 받았는데 카라스노 동창회에서 히나타 입술 티슈로 닦아주는 거 보고 급격히 굳는 츳키.


히나타는 뭐야 카게야마!! 하고 악악대고 카게야마는 뭐가 이 보게야! 다 묻히고 먹냐!!! 하는데도 야치가 소리지르는 거에 깜짝 놀라서 젓가락 떨어뜨리니까 히나타랑 싸우면서도 어떻게 그걸 봤는지 젓가락 새거 꺼내다가 직접 뜯어서 놔주고. 계속 보니까 자기한테 해주던 걸 남들한테 고스란히 해주고 있는 걸 보는 츳키는 바보 같이 아무한테나 하는 행동에 나만 설렜네. 싶어서 본인이 한심할 것 같아. 그러면서도 질투가 나니까 처음에는 뭐라 뭐라 하겠지.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바보 같은 선배들 말을 곧이 곧대로 다 듣고 있냐. 여자애들이 오해하면 어떡하냐 하는데 카게야마는 처음에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돌려 말하는 츳키 의중 모르고 같이 틱틱댐. 뭐. 이렇게 하라는데. 안 하면 더 귀찮단 말이야. 오해는 무슨 오해. 내가 뭘 했다고. 싶을 테니까.


츳키는 다른 사람한테 자기한테 해주듯이 다정하게 해주지 않았으면 싶고 안 그래도 여자애들한테 고백 잘 받는 애가 요즘 더 인기 있어지는 것 같아서 싫은데 솔직하게 얘기를 안 하고 투덜대고 카게야마는 츳키가 자꾸 시비 터는 것 같아서 성질나고. 둘이 만나면 으르렁대고 카게야마는 자기가 챙겨준대도 이미 빈정 상한 츳키가 됐어. 내가 할 수 있어. 이러니까 츳키는 안 챙기게 되버려. 그럴수록 츳키는 외로워지겠지. 자기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점점 카게야마가 멀어지는 것 같아. 휴일에는 자기 아니면 만날 사람도 없었던 애가 친구도 많아지고 약속도 많아지고. 자기랑 데이트 해도 계속 문자며 전화가 오고. 또 이제 카게야마는 너는 혼자 할 수 있지? 하고 망충하게 츳키를 내버려두니까 서운함이 켜켜이 마음에 쌓이게 됨. 


근데 그걸 설명해도 카게야마 처음에는 못 알아듣지 않을까.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챙겨주고 필요 없는 사람은 안 챙겨 줘도 되는 거 아니야? 싶겠지. 너는 필요 없대서 안 도와준 건데 그게 왜 서운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도와주는게 잘못된 거야? 카게야마도 답답한 노릇이고. 서로한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 어쨌든 사귀니까 데이트는 해야한다는 카게야마의 고정관념에 꾸역 꾸역 만나기는 하는데 그럴 수록 지쳐서 츳키가 이대로 가다간 자기가 진짜 사소한 것도 이해 못하는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카게야마를 포기했음 좋겠어. 


영화 보고 아무 말 없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카게야마 동기 여자애들이랑 마주쳐서 카게야마는 어색하게 그 사이에 둘러싸여서 이런 저런 인사나 이야기를 듣고 있고 한 걸음 멀리에서 그걸 보는 츠키시마 속에는 천불이 끓겠지. 어디에서 적당히 말을 끊어야 될지도 몰라서 가방끈만 쥐고 응응 대답해주고 있는 얼굴이 이젠 사람 상대하는 게 싫고 짜증나 보이지 않아. 한 여자애의 농담에 피식 웃어보이는 카게야마 얼굴에 많이 변했네. 토비오.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츳키.


츳키가 돌아서서 혼자 갈 길 가니까 그 기척에 당황한 카게야마가 야! 어디가!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친구였냐고 누구냐고 물어보는 동기들을 뿌리치고 오지 못하는 것 같아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김. 한 오분쯤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뛰어온 카게야마가 그렇게 먼저 가버리는 게 어디 있냐고 화내는 걸 가만히 쳐다보다가 왜, 나랑 있는 것보다 재밌어보이던데 그 친구들이랑 같이 놀지. 일부러 빠져준 건데. 하고 대답하는데 카게야마 그 말에 화가 나는데 왜 화가 나는 줄도 모르고 뭐라고 반박해야될 지도 모르겠어서 무슨 뜻이냐. 하고 되묻는데 츳키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카게야마한테 했던, 그냥 친구랑 나랑 같냐는 그 질문을 하는데 카게야마도 계속 반복되는 패턴이 지겹고 짜증나서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건데. 인간관계 다 끊고 너랑만 있어야 되는 거냐고 해서 츠키시마 진짜로 질려버리는 거. 내가 너랑 뭘 하겠어. 그만하자. 하고 홧김에 내뱉어 버림. 그래, 이런 얘기 그만하자. 하고 카게야마가 대답하는데 츳키가 이런 얘기 뿐 아니라 우리도 그만하자고. 다시 한 번 관계를 자르고.


카게야마는 츠키시마랑 싸워도 헤어질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도 못하고 눈만 땡그래져서 쳐다보는데 그 눈이 점점 자기는 억울하다는 모양새로 변하는 걸 보며 츳키가 말함. 내가 설명을 해도 너는 납득하지 못하고 나는 네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겠으니 그냥 이쯤 헤어지자고. 넌 이제 나랑 사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간관계라는 게 생겼으니 거기에 전념하라고. 그게 너한테는 더 좋아보인다고. 잘 지내라고 한 뒤 마침 맞게 도착한 버스에 홀랑 타고 떠나는 츳키.


카게야마 첫키스며 처음 연애하는 거며 거의 모든 처음이 츳키였으면 좋겠다. 서로 엄청 애정표현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 좋아서 사겼을 테니 헤어지고 바로 당장은 실감 안날 테지만 후폭풍 엄청나겠지. 후폭풍으로 왕창 맘고생 하는 카게야마랑 다 포기해야지, 됐다 내가 걔랑 뭘 더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쓰린 츳키가 헤어지고 나서 삽질해줬으면…. 오해도 많이 많이 해주고.... 


카게야마는 딴에 고민상담한다고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잘 안돼서.... 이렇게만 얘기했다가 일파만파 카게야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대!!! 로 소문 퍼져서 카게야마의 그녀를 찾는 소문이 다른 과인 츳키 귀에도 들어가서 아, 그새 다른 사람이 생겼나보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진짜 너무하네. 혼자 더 속쓰려하고. 어디서 또 이상한 조언 주워 듣고 온 카게야마가 다시 친구부터 시작하겠답시고 그래도 다시 친구지?! 하고 따라다녀서 츳키 대환장쇼 벌이는 것도 좀 보고 싶다. 헤어지고도 사랑싸움해라 카게츳키₍₍ ('ω') ⁾⁾ ₍₍ ('ω') ⁾⁾


갑자기 그런 것도 보고 싶어졌어. 나중에 어찌저찌 재결합해서 1부터 츳키가 다시 가르쳐주기로 해서 연인한테 해도 되는 행동, 일반 친구들한테는 하면 안되는 정도 뭐 그런 거 가르쳐주는데 남들은 여기까지만 챙기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된다하고 일반적인  거 가르쳐주는데 카게야마가 근데 넌 왜 그렇게 잘 아는데 안 하냐. 이래서 대판 또 싸우는 거랑 귀엽다 예쁘다 이런 건 다른 애들한테는 막 쓰는 말 아니라고 가르쳐줬는데 나중에 카게야마가 머리 자른 츳키 보고 머리 잘랐어? 귀엽네. 해서 으아ㅏ 이 미친 하고 뜻밖의 여러가지 의미로의 어택 받고 얼굴 새빨개지는 거. 뭐 이런 거 저런 거 알려주다가 이런 건 나한테만.. 까지 하다가 자기 입으로 이런 거 말해줘야하는 창피함+왠지 바란다는 것처럼 들릴까봐 걱정돼서 얼굴 감싸고 내가 왜 이러지 현타 오는거.



 









내일 출근하기 싫을 땐 리맨물 쿨츳 생각하기... 기획부 대리 쿠로오랑 인사부 경력직으로 이동 온 사원 츳키. 막내인데 신입이라고 눈치 안 보고 마이웨이에 장난 한 번에 안 걸려들면서도 유들유들하게 잘 넘겨서 괴물 신입이라는 별명 받은 막내.


비품 신청하는 서류 내러 갈 때 아니면 뭐 인사과랑 그렇게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인사과에 대찬 막내가 들어왔다 이런 얘기만 듣고 그게 츠키시마인 줄은 몰랐다가 출퇴근 기록표 내러 갔다가 츠키시마 보고 그게 너였어?!?! 하는 쿠로오. 츳키는 사원들 이름들 보고 음, 싶었는데 진짜 그 구면인 쿠로오라서 조금 놀라고. 사람들은 우리 막내가 여기 들어와서 이렇게 놀라는 표정 처음이라고 호들갑 떨고.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캐묻는데 쿠로오가 낮에 못하는 걸 밤에 같이 한 후배죠! 이러면서 어깨 동무하는 거 츳키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 올리면서 부활동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다른 학교였습니다. 지역 차이 아주 많이 나는. 이라면서 추가 설명해주기. 


사실 알고보니 둘이 같은 동네에도 살아조. 회사에서 아주 가깝다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멀다고도 못하는 좀 애매한 거리의 동네. 회사에서 걸어가면 40-50분 정도고 지하철로는 20분 정도 걸리는. 하나의 길에서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쿠로오는 오른쪽, 츳키는 왼쪽 길로 들어가서 있는 맨션에서 사는 거. 쿠로오는 자가용, 츳키는 지하철 통근.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는 삼각형으로 된 모퉁이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저녁 먹다가 둘이 마주쳐서 알게 된 거면. 어? 여기 살아? 저는 이 왼쪽. 아! 나는 여기 오른쪽! 해서 집 알고. 둘 다 혼자 사니까 같이 장보러 갔다가 쿠로오가 몇 번 태워주는데 자꾸 태워주는 거 부담스럽다고 자기 따로 가겠다고 하는 거 매정하게 그러지 말고 같은 동네 사는데 카풀이라도 하자고 그래서 아침에 지옥철도 슬슬 힘들었는데 그럼 아침에 해볼까 해서 출근 같이 하고. 퇴근 시간 맞으면 또 같이 가고.  


맨날 부활동이다 뭐다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다가 혼자 퇴근하면 그게 좀 가끔 외롭더라. 다들 바쁘니까 퇴근하고 만나기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나 조금 외로운 거 달래자고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렇게 같이 다니니까 좋다.  종종 먼저 끝나도 자기 기다리고 있는 쿠로오한테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지 왜 그러고 있냐는 말에 그렇게 쿠로오가 답하자 가끔 츠키시마도 쿠로오 야근하는 것 같으면 다른 사람 일 끌어 와서 정리 도와준다고 하면서 같이 야근하고 같이 가고. 인사과는 채용 시즌이나 월급 나갈 때 그럴 때 특정 시기 아님 딱히 바쁜 일 없어서 일 만들어서 기다리기도 좀 그럴 때 딱 맞게도 기획팀 안 바빠져서 한참 둘이 붙어 다녔으면 좋겠다. 


근황부터 시작해서 이것 저것 막 물어보는데 사실 쿠로오 빼고 다 츳키랑 연락하고 있어서 쿠로오 좀 삐졌으면 좋겠다. 그래, 뭐 아카아시 만나는데 보쿠토가 빠지는 것도 이상하니까 걔네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리에프까지 연락하면서 만나고 있었단 말이야?! 싶으니까 자기도 츳키 보기 전까지 별로 생각 안 했으면서 괜히 소외감 들고. 자기한테는 연락 안했다고 한참 꽁해서 투덜거리는 거 맞춰주느라 또 같이 다녀줬어야했던 것도 있었겠지. 이 사람 고등학생 때에는 되게 어른스러웠던 것 같았는데 왜 이제와서야 소학생 같은 짓을 하는 거지 싶으면서도 그게 나쁘지 않아서 말로는 놀리고 귀찮은 척 한숨 쉬면서도 쿠로오가 어울리자는 대로 돌아다니는 츳키. 


그래도 가장 두 사람이 가장 많은 저녁 시간을 보낸 건 모퉁이 식당. 거기에서 술도 마시면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동안의 많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거. 술은 약하면서도 숙취는 별로 없어서 술 취해서 들떠서 바보 같은 짓 하느라 늦게 집에 들어가서 술은 세도 아침에 약한 츳키가 걱정되면 보통은 모퉁이 식당 앞에서 츳키 픽업하던 쿠로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츳키네 가서 깨워주고 가끔은 그냥 술 취한 채  츳키네서 자고 같이 출근 했으면 좋겠다. 취한 와중에도 제대로 씻고 와서 츳키 옆에 누워서 허리 끌어 안고 부비작 거리면서 아 좋다. 나 진짜 외로웠나봐. 이러고 웅얼 거리는 거 츳키는 빨리 잠이나 자라고 코 꼬집고. 금방 잠드는 쿠로오 옆에서 혼자 잠 못들다가 진짜 쿠로오가 깊이 잠든 것 같을 때 살그머니 제 등을 안고 있는 쿠로오 팔을 아래로 내려주면 엎드려서 베개에 얼굴 묻고 끙끙대며 자는 쿠로오 등을 한참을 바라보는 거. 


쿠로오는 몸에 배인 친절이고 그냥 사람이 좋아서 하는 행동인데도 츠키시마는 그걸 가볍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왜 반했는지도 모를 짧은 사이 반해 버린 어린 시절의 첫사랑. 그저 휘몰아치는 청춘의 한 장면에서 별 다르게 쓰여지지도 못하고 접히고 만. 그냥 그렇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마주하니 생생하게 떠올라 버려서. 전에야 거리도 멀고 그냥 이러다 말겠지 하고 츳키도 바쁘니까 잊고 살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자꾸 기대하게 만드니까. 맨날 붙어다니지, 다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질투하지, 뭘 하든 자기랑 같이 하길 바라니까.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심란하다가도 그냥 내가 오해하고 싶은 거지, 착각하고 싶은 거지 하는 현실적 해석이 들면 그게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고. 모처럼 주변 사람들이랑 업무량도 마음에 드는 회사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첫사랑이 눈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어서 아, 진짜 세상 살기 힘들다. 이 생각만 드는 츳키 보고 싶다. 


이렇게까지 친해지지는 말 걸. 그냥 무시하고 둘 걸. 애초에 왜 따라다녔지. 카풀 왜 한다고 했지. 그 와중에도 자기가 자기 안은 쿠로오 팔 내려놨으면서도 그 새 그 무게가 사라진 게 아쉬워서 베개 끌어안고 있는 팔에 이마를 콩 닿게 해보는 거. 그럼 잠결에도 다시 몸 돌려서 츳키 끌어 안고 토닥거리면서. 응, 자자. 자자.... 웅얼거리는 쿠로오. 그 품 속에서 다시 숨을 들이마신 채로 제대로 뱉지 못하면서 쿠로오의 이 버릇이 이 전까지 사귀었다 헤어졌던 여자친구한테 했었던 버릇이겠지 생각하면 그냥 울고 싶어서 입술만 깨무는 츳키. 안 될 걸 아는데 자꾸만 욕심이 나니까. 이럴 까봐 계속 연락 안했던 건데... 속상하고 그런데도 다독거려주는 손길이 좋고.츳키가 쿠로오 좋아했던 거는 쿠로오만 빼고 제3체육관조는 다 알던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가장 얘기를 많이 들어준 건 아카아시. 그래서 입사한 회사에 쿠로오씨가 있더라고요. 했을 때 그 한마디로 아카아시가 더 신경써서 츳키랑 메시지 주고 받아주고. 


사람이 천성이 그런 걸 아카아시도 쿠로오한테 뭐라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그냥 얘기나 들어주자 싶은 거지만 참 보는 사람이 가장 답답함. 그도 그럴게 진짜 친한 후배라고 해도 쿠로오가 츳키한테 대하듯이 하지는 않으니까. 술 취하면 자꾸 끌어 안고 잔다는 데 진짜 듣기만 해도 환장할 노릇이겠지. 쿠로오랑 둘이 술 마시면서 뒷감당하기에는 점점 감정이 부풀어오르는 츠키시마 도와주러 같이 술자리도 꼈는데 본인은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보고 있으면 츠키시마가 힘들만도 한 게 보여서. 이거 맛있다고만 하면 될 것 굳이 먹여주고. 거의 여자친구 에스코트 하듯이 츳키를 챙기는 거. 진짜 좀 호감이 있는 건가 하기에는 1도 그런 눈치는 안보이고 그냥 내 새끼 우쭈쭈기는 한데. 아니,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들이 보이는 거. 소꿉친구인 켄마를 워낙 잘 챙겨주던 게 버릇이라서 그런 거라고는 해도 그 때보다 더한 것 같음. 꼬치구이집에서 술 마시다가 기름이 츠키시마 손등에 튀어서 조금 빨갛게 됐는데 벌떡 일어나서 약 사오겠다고 하는 건 가관이었지. 


쿠로오가 덮어준 물수건 쥐고 고개 푹 숙이는 츠키시마를 다독여주는 수밖에 없는 아카아시.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게 맞네. 별 도움 안되는 위로를 건네며 술 따라주고. 그러다 쿠로오가 되도 않는 오해해줬으면 좋겠어. 쿠로오는 아직 전 여자친구를 못 잊어서 종종 츠키시마한테 옛 연인 얘기를 늘어놓곤 했는데 그러다가 츠키시마 연애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츳키는? 사귀는 사람 없어? 하고 취해서 물어보는 거. 있으면 이렇게 쿠로오씨랑 안 노닥거린다고 티격태격하다가 츳키도 에라 모르겠다 집 근처인데 마셔버리자. 해서 좀 알딸딸하게 마신 상태라서 말 하기 힘든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버려. 쿠로오는 나 그렇게 이해심 없는 사람 아니라고 꼬치꼬치 캐묻겠지. 유부녀? 고등학생? 이혼녀? 아니면 우리 회사 사람? 하다가 츳키가 남자요. 해서 입 다물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이다 술 마시는 쿠로오 빤히 보다가 픽 웃고 거 봐요. 말 하기 힘들다고 했잖아요. 일어날까요. 하고 정리하려는 츳키 잡아서 다시 앉히는 쿠로오. 아니, 미안. 정말 생각도 못했던 거라. 근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절대 아니니까! 하고 자기가 성급히 물어본 것에 대해서 사과하는 쿠로오. 그리고 어영부영 미적지근하게 술만 더 마시다가 식당을 나오는데 평소라면 취해서 자기 집이든 츳키네 집이든 같이 자자고 할 사람이 그럼 내일 봐. 하고 비척비척 자기 집으로 가는게 츳키는 못내 서러웠겠지. 아, 그 전에 쿠로오가 근데 그럼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인거야? 하고 물어봤을 때 네. 하고 대답했던 게 있어서. 괜히 자기 마음 들킨 것 같고. 괜히 말했다 싶어서. 그날 츠키시마는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다 많이 울었을 것 같다.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아래에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자 놀라 굳었던 얼굴과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가던 쿠로오의 뒷모습의 기억에. 그리고 기절하듯 잠에 들었을 것 같고 쿠로오는 엄청 마신 술에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만이 깨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 같고.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라... 츠키시마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어지간히 예쁘다고 소문난 회사 여자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다들 아 츠키시마라면 저렇게 예쁜 여자 어울린다고 할 정도여서 당연히 츠키시마는 나중에 엄청 미인이랑 연애하다 결혼할 줄 알았지. 그런데 남자를 좋아한다니까 좀 의외라서 놀란 것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겠지. 그리고 아침에 어색한 티 안내려고 일부러 더 쫑알쫑알 말 늘어놓으면서 아침부터 츳키 정신 없게 회사 데려가는데 다 티나서 츳키는 더 씁쓸할 것 같다. 쿠로오 반응 보고 더 자기 마음은 체념에 가까워질 것 같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어쨌든 그 반응 속에 묻어나온 건 자기를 연애 상대로는 1도 보고 있지 않았다는 거니까. 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친절에 나 혼자 설렜구나. 자기가 더 바보 같았을 거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쿠로오랑 거리 두기 시작하는 츳키. 쿠로오도 전처럼 자주 츳키를 데리고 어디 가자거나 뭘 하자는 제안도 현저히 줄었고. 다시 퇴근은 따로 하는 날이 늘어나고. 그러다 오랜만에 츳키랑 같이 퇴근  할까 하는데 츳키가 아, 약속이 있어서... 죄송해요. 먼저 가세요. 해서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했는데 혼자 할 거 없이 돌아다니다가 츳키랑 아카아시랑 같이 있는 걸 보게 되는 거지. 멀리에서 둘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다가 츳키가 천진하게 웃는 옆모습에 아, 요즘 츠키시마가 저렇게 웃는 걸 못봤네. 하다가 아, 혹시 좋아하고 있는 남자라는 거. 아카아시였어?!!! 하고 혼자 오해해버려라. 


둘이 즐겁게 웃다가 아카아시는 먼저 걸음 옮기고 츠키시마가 조금 멈춰서 쓸쓸한 표정 짓는 거 보고 오해를 기정사실로 단정지어버리고. 따라가볼까 했는데 그것도 우스워서 집에 돌아오면서 내내 혼자 삽질하기 시작하겠지. 그러고 보면 제일 많이 얘기하는 것도 아카아시였지. 계속 아카아시 같이 부르면 안 되냐고 하고... 아 .. 그래서... 그러고 혼자 또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붕방붕방 이어주려고 해보자! 불타오르는 거. 셋이서 밥 먹자고 하거나, 어디 가자고 하거나. 그런데 셋이 만나면 예전에는 몰랐는데 둘이 계속 붙어 있고 츠키시마가 자꾸만 아카아시만 쳐다보는 게 이제 너무 의식 돼서 미치겠어. 자기가 계속 츳키 챙기는 게 익숙해서 츳키 챙겨주려고 하면 아카아시가 가로채는 것도 조금 짜증나고. 그러다 영화보러 가자 하고 자기는 일 있다고 빠져주는데 둘이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래 뭐... 갑자기 일 생겼다는데. 하고 영화보러가는 게 둘 뒷모습 보는데 너무 서운한 거. 자기한테 남자 좋아한다고 말한 게 자기도 연애할 시간 좀 달라고 돌려 말한 거였나. 내가 츠키시마한테 그렇게 방해였나. 이렇게 그런 말 하고 옳다구나 거리 두면서 같이 있기 싫어할 정도로?(그런 적 없음 싶은 거지. 


그러다 괜히 아카아시는 남자 좋아하는 거 맞나? 괜찮나? 아카아시한테 츠키시마가 고백했다가 차이고 상처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괜한 오지랖도 생겨서 아카아시랑 둘이 보자고 해서 에둘러 아카아시의 연애관이나 이상형 뭐 그런거 물어보는데 대답 빙빙 돌리던 아카아시가 자기 보쿠토랑 사귄다고 말해버리고. 쿠로오 대멘붕. 내가 얘네를 이어주려고 자꾸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었구나... 츳키 어떡하지. 하고 그 때부터는 또 자꾸 츳키랑 아카아시 떼놓으려는 거. 자꾸 아카아시 사람은 좋은데 뭐가 아쉽다 어쨌다 츳키한테 너스레 말하고. 츳키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어서 그냥 처음만 신경쓰다가 신경 딱 끊고 참다 참다 아카아시씨 돌려서 험담하지 말라고 하는데 쿠로오가 근데 너 좋아한다는 사람. 안 좋아하면 안 되냐고 그러겠지. 츠키시마는 그 말 듣는데 숨이 탁 막히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랬어요? 좋아하지 말라고. 자꾸 그렇게 했어요? 하고 물어보겠지. 츳키는 쿠로오가 자기 좋아하지 말라고 계속 이상하게 행동한 거냐고 물어보는데 쿠로오는 자기가 아카아시 없는 험담 지어서 한 거 물어보는 줄 알고 고개를 주억거릴 테고. 그 말 없는 대답에 츠키시마는 허, 기가차서 한숨을 뱉고 짜증스럽게 일어나겠지. 진작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걸. 잘 알았습니다. 그럼. 학생때보다 조금 더 긴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계산하고 나가버리는 걸 쿠로오는 잡지 못하고. 


애초에 둘이 친하게 지내려고 붙어 있었던 거지 안 그러려면 얼굴 볼 일 없고 다른 사무실 써서 찬바람 냉랭한 두 사람. 쿠로오는 자기는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왜 자기한테까지 이러나 억울할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다가가려고 해도 츳키는 피하고. 끊었던 담배가 절로 생각나서 옥상에 올라갔는데 담배 피우고 있던 츳키랑 마주치게 되는 거. 자기 보자마자 담배 끄고 나가려는 거 잡고 빙빙 돌려 말한 자기도 잘못이지만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하는데 츠키시마도 울컥해서 말함. 그럼 자기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거기에서 아카아시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러면 그걸 어떻게 내가 가만 두고 보냐고 하는데 츠키시마가 진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거기서 아카아시가 왜 나오냐고 하고. 너 아카아시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하는데 이미 쿠로오한테서 마음 떼기로 한 츠키시마도 앞 뒤 안가리고 아니라고 내가 좋아한 건 당신이었다고 하고 내려가버리고.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가망 없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을 거니까 츠키시마한테 쿠로오 대답은 들으나 마나였겠지. 근데 쿠로오는 더 멘붕일 뿐이고. 


아카아시 불러서 하소연하면 세상 한심하다는 눈빛만 돌아옴. 아카아시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츠키시마 더 괴롭히지 말고 그냥 냅두라고 하는데 왠지 쿠로오 반응이 이상해. 얘도 혼란스러운 것 같아서 슬쩍 떠봄. 쿠로오씨, 솔직히 이상했다고. 보통 그냥 친하고 아끼는 후배를 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고. 왜 츠키시마한테만 집착하냐고.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 서운했던 건. 단순한 질투였느냐고 묻는데 쿠로오도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어. 당연하게 그냥 내가 가장 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 자기가 다시 돌이켜봐도 조금 정도가 심했던 것 같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츠키시마를 연애상대로 보자니 그것도 상상이 안가서 더 혼란스럽고. 모르겠다고 맴맴 제자리만 도는 쿠로오한테 잘 생각해보라고. 근데 츠키시마는 더 안 건드리셨으면 좋겠다며 아카아시는 떠남.  


혼자 몇 잔 더 기울이다가 집으로 걸어가는데 모퉁이 식당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츠키시마가 보이고 츠키시마를 더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망설이다 가게 문을 열고 그 앞에 앉는 쿠로오. 둘 다 말 없이 있다가 쿠로오가 말을 걸려는 찰나 먼저 말하는 츳키. 낮엔 죄송했다고. 그런데 자기가 좋아했던 건 당신이었고. 난 아무 기대도 없고,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친한 후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할 생각도 원래는 없었다고. 자꾸만 사과하는 츠키시마에게 쿠로오는 대답할 수 없음. 그냥 츠키시마의 잔이 비면 술잔을 채워주기만 하고. 차라리 진짜 아카아시씨를 좋아했다면 좋았을 걸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하는 혼잣말에 쿠로오는 콱 속이 쓰림. 숙인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데 츠키시마가 일어남. 비틀거리며 계산을 하고 나가는 걸 부축하려 급히 따라가는데 뿌리치는 츠키시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어. 그러니까, 이런 거 하나하나에 자꾸 내가 기대하게 된다고요. 쿠로오씨를 좋아하는 내가 싫어질 정도로. 당신은 아무한테나 베푸는 친절인데. 바보 같이. 울며 웃는 얼굴로 츠키시마는 집으로 들어가고 마찬가지로 술에 꼬인 걸음으로 집에 들어간 쿠로오는 또 잠을 설치고. 


꿈에는 아까 쓰다듬어 주지 못한 츠키시마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던 저와, 뿌리치지 않고 웃으며 그 손길을 받아주는 그가 나옴. 왜 그 웃는 얼굴에 가슴이 뛴 거지. 일어나서도 한참을 꿈 속의 감정을 곱씹으며 나가기 싫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회사에 갔는데 그 날 츳키는 결근. 신경이 쓰여서 종일을 츳키 안부 묻는데 씀. 몸살인 것 같다는 말에 죽이라도 사갈까. 어쩌지 고민하다 결국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다음날이 되고 핼쓱한 얼굴로 출근하는 츳키 훔쳐보고 안절부절 못해하면서 인사부 앞에 알짱거리면서 츳키 기침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속상해죽겠음. 퇴근길에 태워가야지! 하고 결의에 차서 인사부 퇴근하는 거 타이밍 보고 있는데 나가는 츳키가 전화 받으면서 네. 아카아시씨. 네. 괜찮아요. 아.. 안그러셔도 되는데... 아.. 앞에... 대충 이러면서 아카아시랑 만나는 것 같은 뉘앙스로 통화하는 게 들려서 결국 나서지도 못하고 놓침. 혼자 절절매면서 진짜 등신 같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싶어서 혼자 집에서 머리 쥐어뜯고 머리 박고 난리 치는 쿠로오. 


아카아시가 옆에서 츳키 챙길 생각에 짜증남. 내가 더 잘 챙겨줄 수 있는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은데. 그리고 계속 생각나는 건 꿈에서 뭐하는 짓이냐 싶어서 혼자 집에서 머리 쥐어뜯고 머리 박고 난리 치는 쿠로오. 아카아시가 옆에서 츳키 챙길 생각에 짜증남. 내가 더 잘 챙겨줄 수 있는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은데. 그리고 계속 생각나는 건 꿈에서 자기 손길 받으며 해사하게 웃던 츠키시마. 그 얼굴에 다시 두근거리면서 머리 감싸쥐고 웅크려 앉겠지. 좋아하나보다. 좋아하나보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게 생각했냐. 왜 몰랐냐. 자책하면서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찔끔 눈물이 날 것 같은 거.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마트 다 돌아 보고 제일 좋아보이는 딸기 한 팩 사서 츳키네 문 앞에 걸어 두고 오는 쿠로오. 다시 인사부에 제출해야하는 서류 있음 자기가 나서서 다녀오겠다고 하고. 츳키 주변 어슬렁거리고. 아침에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가자고 좁은 골목에서 차 슬슬 움직여가며 타고 같이 가자고 조르고. 몇 번은 무시했는데 그러다 퇴근길에 뒤에 차 오는데도 골목에서 안 비키고 버텨서 결국 차 타고 집에 같이 가는데 츠키시마는 내내 한숨이겠지. 왜 이러는 건데요. 저는 분명... 응. 말했지. 다시 선후배 사이로는 못 돌아갈 것 같다고. 츳키 말을 가로채고 대답하는 쿠로오 옆모습 보면서 근데 왜...! 하는 츠키시마. 


거기에 대답 안 하고 있다가 집으로 안가고 강변쪽으로 차 돌리는 쿠로오. 어두운 강변 공원에 차대고 시동 끈다음에 핸들에 머리 박았다가 심호흡하고 이제 고개 돌리고 자기는 쳐다도 안보는 츳키보면서 말함. 이제 와서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늦은 건가. 순간 놀라서 돌아보려다가 멈칫한 츠키시마가 자기 귀를 의심함.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건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믿기지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집에나 가자고 하는데 팔꿈치를 잡고 팔짱 낀 것 처럼 하고 있는 츳키 손을 쿠로오가 슬그머니 잡아서 츳키 화들짝 놀라서 안 쳐다보려고 했는데 쿠로오 쪽으로 확 고개 돌리면서 손 내뺌. 놀라서 화등잔만해진 츳키 보면서 하하 웃고는 마른 세수하는 쿠로오.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도. 그 고백도 아니고 혼잣말에 가까운 말에 츳키는 처음엔 더 황당하지 않을까. 이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 같은 건 또 뭐야. 이 사람 유치하고 사람 욕심 많아서 지금 나랑 멀어지기 싫어서 되는대로 지껄이는 거야 뭐야. 그런 생각밖에는 안 들 거고. 그래서 아, 됐다. 내가 뭘 또 기대하고 있어. 하고 안전밸트 풀고 나가버리는 츳키. 


쿠로오는 당황해서 츳키 따라가는데 애가 워낙 다리 기럭지가 길다보니 쿠로오가 바로 따라 나가서 쫓아가는데도 이미 성큼 성큼 멀리 나가있어서 좀 뛰어야했고.... 그 거리를 가면서 수만가지 감정이 다시 치밀어오른 츳키는 자기 놀아나는 것 같아서 서러운 게 가장 크고. 그런 소리나 할 거면 자기 혼자 갈 거라고. 잡는 거 뿌리치는데 쿠로오가 가방 붙잡고 얘기 좀만 하자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다시 차로 데려오고. 분해서 식식대는 츳키 눈치 보다가 저기...하는데 츳키가 다다닥 쏘아붙임. 사람이 아주 우습냐고. 맨날 자기 멋대로라고. 좋아한다고 하니까 이런 식으로 그런 애매한 호의로 헷갈리게 해도 되는 거냐고. 따지는데 쿠로오가 아직 내가 좋다는 거 유효해서 그렇게 화내는 거냐고. 정곡 찔린 츳키가 또 발끈해서 나가려는 거 앉힌 쿠로오가 늦어서 미안해. 근데 정말이야.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사실 그랬던 것 같다고. 차분히 설명하다가 그라데이션 억울함 차올라서 같이 따지기 시작함. 


너도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러면 지금까지 그냥 여자 좋아하는 줄 알고 살았던 사람이 친하고 아끼는 줄로만 알았던 동성 후배를 연애 감정으로 보고 있다는 걸 그렇게 쉽게 아 , 그렇구나.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게 사실 그게 아니라고 했을 때 혼란스러운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제대로 고백한 것도 아니고 대답할 수 있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도 아니고 먼저 상황 정리하고 끝내면 다냐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널 챙겨주고 싶었던게 사실 내가 너한테서 제일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고, 나만 너를 제일 잘 알고 싶었던 게 내가 다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는 걸...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었겠냐고... 아니, 내가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혼자 말하다가 답답해서 머리 쥐었다 놓는 쿠로오한테 그게 착각이거나 그냥 단순한 사람 욕심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아냐고. 츠키시마가 묻는데 말문 막힌 쿠로오가 어두운 와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 빨개져서 그러겠지. 처음엔 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꿈을 꿨는데. 네 손을 잡다가, 키스하는 꿈을 꿨다고. 그 말 듣자마자 츠키시마 얼굴도 새빨개지고...


둘 사이에 정적만 흐르다가 츠키시마가 다시 물어봤으면 좋겠다. 어떻게 했는데요...? 서로 어색해서 딴 곳만 쳐다보다가 츳키 물음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눈빛이 얽히고 눈만 깜빡이던 쿠로오가 시선을 내려서 츳키 손위로 자기 손 덮어서 깍지를 낌. 처음엔 이렇게 했다가... 꼼지락 거리며 손바닥이 마주하도록 손을 고쳐 깍지를 끼고 다른 손으로 츠키시마 숙인 앞머리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살금살금 매만짐. 이렇게 머리도 쓰다듬어 줬다가. 그리고 한참 망설이던 손이 달아오른 츠키시마의 귓가로 내려가서 부드럽게 고개를 들어올리는 거. 그리고 주저하던 시선이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얽히는데 장난기 하나 없는 어두운 쿠로오 눈동자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조금 숨이 얕아지는 츳키. 쿠로오가 츳키가 가만히 있는다고 이렇게 계속 해도 되나 재고 있는 몇 초가 몇 분인 듯 길게 느껴지던 츳키가 쿠로오의 고개가 틀어지며 다가올때 살짝 몸을 빼는데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가 츳키 움직임에 같이 물러난 쿠로오가 떨어져서 손 놓는 거. 쿠로오가 떨어지고 나서야 멎는 줄 알았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싫어서 물러난 게 아니라 그냥 조금 놀라서 그런 거였는데 아쉽고...!!!! 


괜히 츳키가 입술 가리고 바짓단만 구겨쥐는데 진짜 할 생각이었다가 거절당한 것 같은 쿠로오가 커흠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그랬어. 그런 식으로... 하다가 엄청 뻘쭘해져서 쿠로오가 이제 믿.....겠어....? 하는데 츳키도 그냥 고개 끄덕끄덕하고. 또 아무말 없어져서 아, 그래도 진짜 믿기는 힘든가보다. 하긴 나같아도.. 하고 조금 시무룩해져서 쿠로오 츳키 안전밸트 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내 또 둘이 말이 없음. 그러다 보통은 모퉁이 식당에서 츳키 내려주는데 츳키네 맨션 앞까지 차 몰고 감. 늦었다. 빨리 들어가서 쉬어. 하고 츳키 보내려는데 츳키가 내리려다 말고 다시 앉더니 쑥 다가와서 쿠로오 뺨에 쪽 뽀뽀하고 도망쳐라. 츳키가 뒤도 안돌아보고 맨션으로 들어갈때까지 과부하 걸려서 아무 것도 못하던 쿠로오가 아무데나 주차하고 츳키네 따라 올라가서 띵동띵동 벨눌러서 츳키가 뭐냐고 문 열자마자 어깨 잡고 밀고 들어가서 포풍키스하고 연애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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